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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안철수 단일화? 정직하지 못한 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이인제 선진통일당 대표는 1997년 대선에서 제3 후보로 나섰다. 바람을 일으키고 19.2%를 얻었다. 이회창 후보의 지지표를 분열시켜 김대중 전 대통령을 탄생시킨 일등공신이란 말까지 들었다.

그는 연말 대선에서 제3 후보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가능성을 어떻게 볼까. 25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이 대표를 만났다. 그는 “양당의 지역 패권이 약화된 만큼 지금 안 후보의 여건은 97년의 나보다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데 정치혁신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덧붙였다.

-제3 후보로 나선 경험이 있다. 안 후보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안 후보가 출마선언 방향은 잘 잡았다. 그런데 제3 세력을 만들어 정치질서를 바꾸겠다는 의지는 약해 보인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지역 패권에 안주하고 국민을 편갈라 온 세력이다. 이에 염증을 느낀 국민이 안 후보에게 몰려 있다. 그런데 안 후보는 양대 정당 기득권 타파보다 한 축인 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기정사실화하는 태도를 보인다. 새 정치를 할 수 있는 제3 정치세력을 만들지 않고 있다. 참모진의 핵심은 민주당에 있던 사람들이다. 민주당에서 노선 투쟁을 해 뚜렷한 명분으로 안철수 캠프로 이동하면 모르지만 아무 설명 없이 슬금슬금 모이고 있다. 선명하지 못한 일이다.”

-97년과 올 대선은 어떻게 다른가.
“97년엔 지역 패권과 낡은 보수·진보가 더 강했다. 지금은 새누리당·민주당이 많이 약화돼 양 세력으로부터의 공격이 약할지 모르겠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고 국민 여론의 힘이 강해졌기 때문에 97년의 나보다 여건이 좋을 수 있다.”

-야권 단일화가 없다면 안 후보는 얼마나 득표할까.
“내가 97년 독자 출마를 선언할 때는 세력화를 추구했다. 11월 4일 국민신당을 창당하고 당 후보로 뛰었다. 초지일관 제3 후보로 돌진했다. 당시 김대중·이회창 후보는 강대한 세력이었다. 하지만 3자 대결에서 10월 말까지 내가 여론조사 1등을 했다. 두 세력으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받았다. 김영삼 대통령에게 200억원을 받았다는 날조된 사실을 두 세력이 같은 날 같은 시간 폭로했다. 내 지지율은 반 토막이 났다. 40% 가까운 지지가 20%로 떨어졌고 결국 3등을 했다. 단호한 의지로 정치 세력화를 통해 치열하게 싸우는 구도로 가도 97년 3등에 머물렀는데 안 후보가 지금처럼 가면 낙관하기 어렵다.”

-안 후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시간이 많지 않다. 입장을 분명히 정리해야 한다. 새 세력을 만들자고 선언해야 한다. 그러면 여러 세력이 연대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한다. 정치는 투쟁이다. 정당을 만들어 정당 후보가 돼야 한다. 내가 20년 넘게 정치했지만 제대로 싸우려면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단일화는 결국 민주당 프레임으로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야권 단일화 없이 승리하는 게 가능할까.
“과거에 제3 세력으로 승리한 적이 없다 해서 제3 후보가 승리하지 말란 법도 없다. 일단 단독 출마한 게 단일화 과정에서 승리하려는 전략전술이라면 옳은 일이 아니다. 기대를 거는 민심의 본질과 다르다. 정직하지 못한 일이다.”

-선진당도 안 후보에게 접촉했나.
“손을 내밀 사람이 내밀어야지…. 주도권을 갖는 사람들이 협력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하지 않나.”

-박근혜·문재인 후보는 어떻게 평가하나.
“국민에게 대선 어젠다를 조사한 결과 첫 번째가 경제 성장이다. 복지·경제민주화는 뒤에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민주당 후보는 무상복지를 놓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경쟁했다. 경제민주화란 어젠다로 국민의 정치·경제·사회적 불만을 재벌들에게 집중시켜 놓았다. 답답한 일이다. 어떻게 성장동력을 확보해 경기를 활성화할지 정책으로 경쟁해야지 않나. 통일을 말하는 사람도 없다.”

-그동안 독자적으로 대선 후보를 낼 뜻을 밝혀 왔다. 정운찬 전 총리와도 접촉했다던데.
“느슨하지만 여러분과 얘기 중이다. 현재는 안 후보 등 세 후보가 국민의 관심을 과점하고 있어 독자 후보를 만드는 길이 막혀 있다. 안 후보가 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하면 우리 당과의 인연은 없는 거다.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와 후보에 대한 검증 결과를 볼 거다. 최선을 추구하지만 차선도 준비하고 있다.”

-차선이란 뭔가.
“당 안팎에서 내가 출마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정당에 대통령 후보가 꼭 있어야 한다는 상식선에서다. 그건 차선이다. 10월 중순이 지나면 귀추가 나온다.”

-선진당 기반은 충청이다. 충청의 대선 민심은 어떤가.
“역대 대선에선 충청이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된다는 공식이 쭉 통했다. 이번에도 충청은 신중하게 선택할 거다.”

-박근혜 후보 지지 흐름이 있지 않나.
“2002년에도 처음엔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가 약했다. 그러나 정몽준 의원한테 몰려 있던 충청 민심이 단일화되면서 노무현 후보 지지로 드러났다. (박근혜 후보 지지도)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이번엔 세종시 같은 충청 공약이 안 보인다. 어떤 이슈가 나와야 하나.
“우리는 충청권 은행을 부활하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97년 외환위기 후 충청권 2개 은행이 없어졌는데 영남의 3개, 호남의 2개 은행은 없애지 않고 공적자금을 투입해 살려냈다. 차별이다. 경제의 심장은 은행인데 지방은행 부활은 절실한 과제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각각 서울대·국회 분원을 세종시로 옮기는 정책을 거론한다.
“선거 때 내놓는 사탕발림 얄팍한 공약에 충청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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