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교 ‘목사세습’ 이제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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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5일 감리교 입법의회 대의원들이 세습금지 법안 찬반 투표를 하고 있다.[사진 크리스천투데이]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감리교·임시 감독회장 김기택 목사)가 국내 개신교 처음으로 교회세습을 금지하는 교회법(장정·章程)을 마련했다.

 감리교는 25일 서울 정동제일교회에서 임시입법회의를 열어 각종 교단 운영 규정을 담은 장정개정안을 심의했다. 세습금지 법안으로 알려진 ‘담임자 파송’ 조항을 무기명 투표에 부쳐 참가자 390명 가운데 과반이 넘는 245명이 찬성해 통과시켰다.

 개정 조항에 따라 앞으로 감리교에서는 부모가 담임으로 있는 교회에서 그 자녀나 자녀의 배우자가 연속해서 담임을 맡을 수 없게 된다. 장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장로로 있는 교회에서 그 자녀나 자녀의 배우자가 연속해서 담임을 맡을 수 없다.

 세습금지 법안은 공포 즉시 시행된다. 조경렬 아현감리교회 담임목사는 “교단 최고 책임자인 감독회장이 수일 내로 개정 장정을 공포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의미 있나

감리교는 소속 교회가 6500개, 신도 수는 165만 명에 이르는 매머드 교단이다. 하지만 2000년 광림교회, 2006년 금란교회 등 소속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잇따라 담임 자리를 자식들에게 물려줘 사회적 논란을 불렀다.

 조경렬 목사는 “ 감리교회가 좀더 건강한 모습으로 발전할 수 있는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겠나 한다”고 말했다. 교단 내 개혁을 주장해온 전국감리교목회자개혁연대(전감목) 기획국장 김명섭 목사 역시 “선언적인 의미가 크긴 하지만 법 통과 자체는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번 법안의 실제 효과에 대해 조 목사는 “감리교는 개체 교회의 재산이 교단 재단에 속해 있다. 때문에 각 교회가 법을 지키지 않을 도리가 없다. 법을 어기고 이전처럼 담임 자리를 세습하는 교회는 교단을 떠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교단 주변에서는 목동의 한 중형 교회 등 몇몇 교회가 법 통과로 인한 말썽을 피하기 위해 지난 주말 서둘러 교회 세습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는 얘기도 돈다. 벌써부터 법이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남은 숙제는

세습금지 찬반 투표를 앞두고 총회장 분위기는 팽팽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밝히면 고성과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전감목 김명섭 기획국장은 “일방적인 찬성이 아니다. 반대표가 130표 넘게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법안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이 많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실제 시행 과정에서 어려움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장로의 아들은 안 되고 집사·권사의 아들은 담임을 맡아도 되느냐는 문제도 제기됐다. 경기도에서 목회를 하다 지난 4월 은퇴했다는 한 원로목사는 “장로보다 집사나 권사의 영향력이 더 큰 교회도 있다. 법 자체가 균형이 잘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명섭 기획국장은 “부자 세습이 열에 하나라면 제3자를 거친 변칙 세습, 담임목사직 매매는 열에 아홉이다. 교회 사유화를 막을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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