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외국인 학교 보내려 국적까지 바꾸다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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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우리 사회에서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사람들이 자녀의 외국인 학교 입학 비리 사건에 연루돼 줄줄이 소환되고 있다. 재벌가 자녀, 대기업 회장의 아들 부부, 대형 로펌 변호사 부부, 전직 국회의원 며느리 등이다. 자녀를 외국인 학교에 넣기 위해 브로커에게 5000만원에서 1억원씩 돈을 주고 중남미나 아프리카 국가의 위조 여권이나 시민권을 산 사람들이다. 검찰 관계자나 언론은 이들을 사회지도층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으나 이런 용어조차 붙이기 아깝다. 남편의 외삼촌이 현직 고관인데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위조 여권으로 자녀의 부정 입학을 감행한 재벌가 부인이나 남편의 사회적 지위를 위해 스스로 한국 국적을 내던지고 자녀를 입학시킨 대기업 임원 부인에게서 돈으로 뭐든 다할 수 있다는 천박함만 보인다. 이런 사람들에게 사회적 책임 의식이나 모범을 보일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인천지검이 앞으로 소환할 대상자만 50~60명 정도 된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 사회 일각의 외국인 학교 선호 현상은 못 말릴 수준이다. 자녀가 외국에 가지 않아도 어려서부터 외국어를 습득할 수 있고, 잘사는 아이들끼리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인맥을 쌓으며, 나중엔 외국 대학에 진학한다는 이유로 국적 세탁과 같은 불법을 거리낌 없이 저지른 것이다. 자기 자녀를 위해서라면 법을 어기는 것쯤 우습게 여기는 부모 밑에서 나라에 보탬이 될 인재가 나올 리 없다.

 검찰은 이들이 범한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에 대해 철저히 조사해 사회 기강 확립 차원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 50개 가까운 국내 외국인 학교 가운데 서울 강남 등에 있는 극히 일부 학교에서 적발된 이번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 다른 외국인 학교에 대해서도 수사 범위를 확대해 비리를 발본색원해야 한다. 교육과학기술부와 시·도 교육청도 외국인 학교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작 교육을 받아야 할 국내 거주 외국인 등이 이런 허위 국적자들에게 밀려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