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내년 예산안, 정치에 오염되지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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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내년 예산안이 어제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다음달 2일 국회에 제출된다. 총지출이 올해보다 5.3% 늘어난 342조5000억원으로 잡혔으며, 국민들은 1인당 평균 550만원의 세(稅)부담을 안게 됐다. 내년 예산안에는 ‘균형재정’을 향한 의지와 가라앉는 경기를 되살리려는 고민이 동시에 엿보인다. 분야별로는 보건·복지·노동 쪽의 예산이 97조원을 넘어, ‘복지예산 100조원’ 시대가 코앞에 다가왔다. 지식사회와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교육과 연구개발(R&D) 예산을 크게 늘린 것도 눈에 띈다.

 하지만 ‘균형재정’과 ‘경기부양’의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는 쉽지 않다. 여기에다 정부는 내년 경제성장률을 4%로 잡고 예산안을 편성했다. 문제는 올해 3.3% 저성장에 이어 내년에도 유럽 재정위기와 중국의 경기 하강으로 경기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미 내년 성장 전망치를 종전의 4.1%에서 3.4%로 낮추었다. 정부의 낙관적인 기대와 달리 대부분의 국내외 경제 예측기관들이 내년 성장률을 3%대 중반으로 내다보고 있다. 따라서 경제성장이 4%를 밑돌 경우 국세 수입이 감소해 재정적자의 폭은 커질 수밖에 없다.

 내년 국민부담률이 26.1%로 소폭 오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보인다. 복지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국민부담률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수준(35%)까지 서서히 올리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세목별로 보면 불균형이 어른거린다. 대기업들의 법인세는 올해 대비 1% 증가하는 반면, 샐러리맨·자영업자·소비자들이 내는 소득세와 부가세의 세수 증가율이 각각 12%와 9.1%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조세 형평성 논란까지 부를 수 있다.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 정부가 당초 목표대로 소득세·부가세를 거둘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가게 됐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대목은 국회의 심의·의결을 거치면서 예산안이 정치적으로 왜곡될지 모른다는 점이다. 지난해 정치권은 충분한 재정 소요나 수요 예측 없이 ‘0~2세 무상보육’을 끼워넣었다가 엄청난 후유증을 불렀다. 올해도 이런 잘못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특히 이번 예산안은 이명박 정부가 편성했지만 실제 집행은 차기 정부 손에 넘어간다. 연말 대선에서 여야 후보들이 선심성 공약을 쏟아낼 경우 이른바 ‘박근혜 예산’ ‘문재인 예산’ ‘안철수 예산’ 등이 졸속으로 삽입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의 예산안은 균형재정과 경기부양 사이의 고육책(苦肉策)이자 어정쩡한 타협의 산물로 보인다. 이를 다시 가다듬고 혈세가 낭비되지 않도록 꼼꼼하게 따지는 일은 국회의 몫이다. 여야가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예산안을 오염시킨다는 의심을 사선 안 된다. 설사 여야가 복지예산을 늘리더라도 재원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자제해 주길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올해는 국회가 법정 처리 시한 내에 예산안을 깔끔하게 통과시키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