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현의 풋풋한 자연의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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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는 읽히지 않고 시답지 않은 시들만 읽히는 시의 위기 시대라서 그런가. 세상의 빠른 변화에 어지러워서인가. 시의 첫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시집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시인의 첫 마음으로 돌아가 우리 삶에 있어서 시는 무엇이고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묻는 시집들이 눈에 많이 띈다. 최근에 나온 안도현(사진) 씨의 일곱번째 시집 『아무것도 아닌 것에 대하여』(현대문학북스.5천5백원) 에도 그런 시들이 많이 있다.

"호두가 아구똥지게/껍질을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감자가 덕지덕지/몸에다 흙을 처바르고 있는 것, //다 자기 자신이 물집이라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다//터뜨리면 형체도 없이 사라질 운명 앞에서/좌우지간 버텨보는 물집들//딱딱한 딱지가 되어 눌어붙을 때까지/생(生) 이 상처 덩어리라는 것을/알면서도 모른 척한다//그래서, 나도 물집이다/불로 구워 만든 물집이다/나도 아프다" ( '물집' 전문)

본질은 은폐되어 있다. 밝히려 들거나 유용성을 따지려든다면 형체도 없이 사라지는 게 본질이다. 감자가 흙을 뒤집어 쓰고 호두가 견고한 껍질로 악착스레 속살을 감추고 있듯 우리 또한 속내를 감추고 있다.

말 못할 사랑이나 그리움 같이 그것은 삶의 상처다. 그 은폐된 본질, 삶의 상처가 시는 아닐까 하고 안씨는 이 시집에서 묻고 있다. 그렇다면 시는 호두나 감자같이 우리 삶의 양식이 될 수는 없는 것인가.

"삶은 때로 머리채를 휘어잡히기도 하였으나/술상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시간보다/목 빼고 빗줄기처럼 우는 날이 많았으나//빗소리 듣는 동안/연못물은 젖이 불어/이 세상 들녘을 다 먹이고도 남았다네/미루나무 같은 내 장딴지에도 그냥, 살이 올랐다네" ( '빗소리를 듣는 동안' 중)

쩍 쩍 갈라터진 마른 논에 봇물 들어가듯 시가 있어 팍팍한 우리 삶은 그리움으로 축축하게 젖는다. 이것이 우리를 인간적으로 살찌우는 것이다. 전주에서 자연과 벗하며 사는 시인이기에 안씨는 자연의 풋풋한 섭리와 삶과 시를 이 시집에 와서 낙관적으로 일치시키고 있다.

그러나 시집.산문집.동화집 가리지 않고 너무 부지런히 펴내며 대중적 독자를 향하고 있어서 그런지 시 자체에서 꽉 영글어 절실한, 해서 독창적인 이미지 혹은 구절들이 많지 않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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