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미사일 협상, 사거리 연장만으론 미흡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한국과 미국의 미사일 협상이 타결 단계라고 한다. 1년8개월이 넘는 지루한 밀고 당기기 끝에 사거리는 800㎞로 늘리되 탄두 중량은 500㎏을 유지하는 선에서 최종 조율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1979년 미국과 합의하고, 2001년 개정한 미사일 지침에 따라 사거리 300㎞, 탄두 중량 500㎏ 이상의 탄도미사일을 개발하거나 보유할 수 없게 돼 있다. 대량살상무기 운반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 탄도미사일 기술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라지만 주권국의 자주국방 노력을 제약하는 족쇄라는 비판도 많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서 벗어나 있는 북한은 미사일 개발에 전력을 기울여 왔다. 남한 전역을 겨냥해 실전배치한 스커드미사일만 1000여 기에 달하고, 미 본토까지 닿을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장거리 미사일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남북한의 미사일 격차는 비교가 무색할 정도다. 현행 미사일 지침으로는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맞설 수 없다는 절박한 위기의식하에 한국은 지난해 초부터 미국과 개정 협상을 벌여온 것이다.

 양측이 합의한 사거리 800㎞는 주변국인 중국이나 일본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북한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현실적 선택이라고 본다. 하지만 탄두 중량을 500㎏으로 유지하는 것은 문제다. 유사시 미국의 핵우산과 전시 증원 병력이 위력을 발휘할 때까지 최소 1시간 정도는 자력으로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탄두 중량 500㎏으로는 미사일 기지 등 북한의 전략적 목표물에 대한 효과적 타격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민간용 우주개발을 위해서는 고체연료 로켓 개발이 필수적이지만 이를 여전히 금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미사일 지침의 족쇄에서 자유로운 일본은 이미 오래전에 ICBM급 우주발사체 기술을 확보해 상용화하는 단계까지 갔다. 이런 차별대우에 한국인들은 의문을 품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2류 동맹국’이란 불만 섞인 소리까지 들린다. 중국이 부상한 21세기에도 미국이 한국을 중요한 동맹국으로 여긴다면 적어도 민간에 적용하는 족쇄만큼은 풀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