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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에 '피'가 맺혀가면서까지…그들이 찾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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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생활의 달인’에 소개된 우리 시대 ‘달인’들. 왼쪽부터 모든 감각을 동원해 명품과 가짜를 구분하는 명품 감별사 박원범씨, 기계로는 흉내낼 수 없는 솜씨로 야구 배트를 만드는 일본인 달인 쿠마가이씨, 손님이 찾으면 수원 시내 전역에 떡볶이를 배달하며 떡볶이업계의 큰 손으로 소문난 달인 백찬윤씨. [사진 SBS]

뜨거운 철판 위에 계란을 깬 후 휘휘 젓는다. 미리 말아놓은 김밥 위에 두르면 순식간에 ‘김밥 품은 계란말이’가 완성된다. ‘김밥의 달인’ 송한민씨는 싱글벙글 웃는다. “전, 일하다 죽을 각오로 일해요.”

 열정과 기술로 똘똘 뭉친 우리 이웃들의 기발한 ‘생업 노하우’를 소개하는 ‘생활의 달인’(SBS). 1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우려를 깨고 8년째 시청률 10%대를 유지하는 장수 프로그램이 됐다.

 ‘달인’과 성격이 다르지만, 케이블 프로그램 ‘화성인 바이러스’(tvN)도 4년째 방영되고 있다. 하얀 피부를 가지고 싶어 6년 동안 2억원을 쓴 ‘백인 피부남’, 강남에서만 머물기를 고집하는 ‘강남빠녀’ 등 별나게 사는 사람들을 ‘화성인’이란 이름으로 소개한다. 출연자는 매회 화제가 되고, 평균 시청률은 1%를 넘긴다.

  그만 하면 소재가 달릴 것 같은데, 프로그램은 여전히 순항 중이다. 사람 사는 세상의 만물상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프로그램의 성패를 가르는 ‘숨은 사람 찾기’의 비결을 제작진에게 물었다.

 ◆양으로 승부

일단 후보가 많아야 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TV 카메라를 꺼리고, 촬영에 응했다 해도 돌연 취소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생활의 달인’ 이상준 PD는 “도넛 달인을 찾기 위해 도넛 공장 100여 곳에 밤새워가며 전화를 돌렸다. 후보를 10명 내외로 추린 다음, 점심을 부산에서 먹고 저녁을 광주에서 먹는 식으로 인터뷰를 다녔다. 많이 만나봐야 진짜 달인을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몸이 바쁠 수밖에 없다. 때를 미는 달인을 찾기 위해 하루 4군데씩 찾아 다니며 직접 경험하느라 제작진의 등에 피가 맺혔을 정도다. 그렇게 소개한 달인이 지금까지 2700여 명. PD·작가 등 30명이 뛰어온 결과다.

 그럼 화성인은 어디에 숨어 있을까. 최연희 작가는 “화성인 후보는 대부분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에서 활동한다. 온갖 동호회·블로그· 트위터 등에서 사람을 찾아 하루 종일 e-메일을 보내는 게 일”이라고 밝혔다. 홍익대·이태원 등 젊은이들이 몰리는 번화가에서 외모·패션이 독특한 이들을 캐스팅하기도 한다.

 ◆삼고초려는 기본

프로그램에 안성맞춤인 사람을 찾아냈다고 해서 다가 아니다. 방송 출연을 거부하기가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상준 PD는 “분리수거 달인 등 힘든 직업일수록 자식들 때문에 노출을 꺼린다. 삼고초려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계곡 근처 백숙집에서 밥상을 들고 뛰어다니며 배달하는 친구를 인터뷰하기 위해 며칠을 함께 일했다”고 털어놓았다.

 화성인의 경우, ‘1회용녀’ ‘난장판녀’처럼 손가락질 받는 경우가 많아 섭외에 더 애를 먹는다. 최 작가는 “독특하다고 이상하게 볼 게 아니라, 밥 사주고, 얘기를 듣고 또 들으며 기다린다. 그 친구들이 개인적인 문제를 털어놓을 정도로 듣는다”고 했다. 후보자가 자주 나타나는 곳에서 ‘잠복근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적합한 후보를 찾아낼 도리가 없을 때, 제작진은 ‘꺼진 불’을 다시 본다. 이 PD는 “5년 전 맷돌 만드는 분을 취재했었는데, 그땐 무심코 지나쳤다. 그런데 맷돌을 손으로 만드는 분이 점점 사라지면서 지금은 달인이 됐다. 모아둔 자료를 절대 버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PD의 방에 6㎜ 녹화테이프가 수천 개 쌓여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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