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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리움 '이중섭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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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화가 이중섭(1916~56)은 40년 짧은 인생을 고스란히 그리는 일에 바쳤다. 죽음이 가까워지자 그는"남들은 세상과 자기를 위해서 바쁘게 일하는데 그림만 신주처럼 모시고 다니고…이게 뭐야"라고 한탄했다지만, 아마도 더 많이 그리지 못하는 안타까움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소설 같은 삶과 요절로 탄생한 신화 속에서 정작 이중섭 그림에 대한 심도 있는 연구가 이뤄지지 못한 점 또한 아쉬운 일이다. 올 들어서는 유족이 경매에 내놓은 작품이 가짜 시비에 휘말리고, 이어 진품 수백 점을 30여 년 지녀왔다고 주장하는 소장가가 나타나 이중섭은 미술계의 뜨거운 감자가 돼버렸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는 비극이란 단어가 어울리는 화가다.

▶ 이중섭의 1951~56년 작 '봄의 어린이'(上)와 일반에 처음 공개된 1942년 작 '소와 여인'.

이런 와중에 이중섭 작품전이 열린다. 19일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Leeum)의 '블랙 박스'전시장에서 막을 올리는 '이중섭 드로잉: 그리움의 편린들'전이다. 선묘가 빼어난 화가로 꼽히는 이중섭은 선이 중요한 드로잉이 작품 세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만큼 이중섭 예술의 고갱이는 드로잉이라 할 수 있는데 이번 전시는 그의 드로잉에 주목한 첫 자리로 뜻이 있다. 1940년대 작부터 말년작까지 100여 점이 나와 시중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중섭 작품의 진위 논란에도 좋은 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중섭의 상표가 돼버린 은지화, 가족에게 보낸 편지화와 엽서화, 스케치, 연필소묘 등 그의 선묘가 잘 드러난 출품작은 그의 생활 하나하나가 드로잉이었음을 보여준다. 삶과 예술이 일치한 셈이다. 자신의 상징이자 자화상이라 할 대표작 '황소'를 위한 밑그림을 비롯해 일본인 아내 마사코(한국이름 이남덕)와의 사랑을 은유한 '소와 여인' 등 처음 공개되는 작품도 그가 얼마나 선을 기막히게 다루는 화가였는지를 입증하고 있다. 그림 스승인 임용련으로부터 물려받은 반복과 훈련에 철저했던 이중섭은 옅은 연필선으로 형태를 잡은 뒤 굵고 강력한 선획으로 단순에 그려나갔다.

전시를 기획한 이준 학예연구실장은 "이중섭의 드로잉은 동양회화의 근본원리를 정리한 사혁의 '화육법론(畵六法論)'을 적용하면 잘 어울린다"고 설명했다. 그림에 깃든 생동하는 혼과 정신, 사물 형상에 쓴 필획, 정확한 관찰에 기댄 묘사, 모사와 반복을 통한 끊임없는 수련 등이 동양미학과 연결된다는 지적이다. 이 실장은 최근 이중섭 위작 논란에 대해 "그가 수도 없이 그림을 그렸다는 전제 아래 그의 미공개작이 수백 여점이 될 것이라고 막연하게 추정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며 "이번 전시가 실증적인 이중섭 연구의 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31일 오후 2시 삼성아동교육문화센터 강당에서 학술토론회가 열린다. 8월 28일까지. 02-2014-6901(www.leeum.org).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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