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협력 바람직하지만 … 상업화의 ‘가시’는 조심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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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혁신 클러스터로 위기를 넘는다. 19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클러스터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왼쪽부터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크리스티안 케텔스 교수, 이재구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 루이스 산스 국제사이언스파크협회(IASP) 사무총장, 모데카이 셰베스 와이즈만연구소 부총장.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한국 사회에서는 기업 프로젝트와 연구비를 잘 따내는 이공계 교수가 대접받는다. 상업화 가능성이 별로 없는 기초과학에만 매달리면 ‘세상 물정 모르는 교수’라는 손가락질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기초과학 연구기관인 와이즈만연구소의 모데카이 셰베스 부총장은 “과학자는 기초과학에서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해야지 상업화에 관심을 가지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래야 오히려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기업으로의 기술 이전도 잘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산학협력을 고슴도치의 사랑에 비유했다. “바람직하지만 극도의 주의력을 갖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다른 고슴도치의 날카로운 가시(상업화)에 찔릴 수 있다는 얘기였다. 19일부터 이틀간 대전에서 열린 ‘제6회 국제혁신클러스터 콘퍼런스(ICIC Daedeok 2012)’에 참석한 국내외 클러스터 전문가를 만났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크리스티안 케텔스 교수, 모데카이 셰베스 와이즈만연구소 부총장, 루이스 산스 국제사이언스파크협회(IASP) 사무총장과 이재구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이 그들이다. 좌담회는 19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장현준 KAIST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사회: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가 어렵다.

 크리스티안 케텔스 교수(이하 케텔스):경제와 환경 문제로 나눠 볼 수 있다. 경제는 지속가능한 성장 머신이 필요하다. 글로벌 수준에서는 생태학적인 도전에 맞서기 위해 혁신이 필요하다.

 모데카이 셰베스 와이즈만연구소 부총장(이하 셰베스):정부가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인프라와 대학에 투자하기에 좋은 시기다. 지금 글로벌 위기가 아닌가.

 사회:재정위기로 유럽이 어렵다. 경제를 회생시킬 방법은 없나. IASP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루이스 산스 IASP 사무총장(이하 산스):격변의 시기다. 생태적 문제, 글로벌 인구 이동, 범죄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수단으로 혁신이 더 중요해졌다. 클러스터와 IASP는 이런 점에서 노력하고 있다. 네크워킹과 클러스터는 함께 가는 것이다. 둘 다 반드시 필요하다.

 이재구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이사장(이하 이): 복합 위기 상황에서 혁신을 통한 성장은 위기 극복의 검증된 대안이다. 기술 혁신을 통한 성장은 기초과학, 응용·융합기술연구, 기술사업화 등의 요소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내·외부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마이클 포터도 “클러스터는 번영과 혁신의 동인”이라고 했지 않았나.

 사회:혁신 클러스터 정책으로 얻는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는데.

 케텔스:그건 나라마다 사회적·역사적 맥락(context)에 따라 달라진다. 실리콘밸리 등 다른 나라 모델을 무작정 베끼지 마라. 각 나라와 문화에 맞게 변용시키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미국의 경우 창업 기회, 시장 수요, 학계의 지원 등이 성공 요인이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기술력 있는 전 세계의 인적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점도 도움이 됐다.

 산스:미국에선 높은 평가를 받는 기업인이 ‘사회적 영웅(social hero)’ 대접을 받는다. 반면 유럽에선 그런 기업가를 다소 회의적으로(skepticism) 본다.

 셰베스:이스라엘은 창업 초기 지원기관(인큐베이터)이 있고 정부도 투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우리는 ‘실패가 허용된다 ’는 점이다.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위험도 기꺼이 감수한다. 이건 사회적 분위기 덕분이다. 그렇게 하는 게 잘하는 것이라고 얘기한다. 젊은이들에게 즉흥적으로 일을 저질러도 보고, 규칙을 깨기도 해보라고 권한다. 많은 신생기업이 위험을 감수하는 이런 젊은이들 덕분에 탄생했다.

 이:대덕특구의 경우 한국 정부는 1973년 대덕을 연구단지로 지정하고 지금까지 40조원을 투입했다. 전국 박사 인력의 11%에 이르는 9055명이 연구개발(R&D)을 하고 있다. 정부 출연 연구기관 28개와 1179개의 기업, KAIST 같은 세계적 대학이 집적돼 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대덕 모델에는 국가 역할이 컸다. 혁신 클러스터에서 오픈 이노베이션과 집단 지성이 활발히 작동하려면 인적 네트워크가 잘 구축돼야 한다.

 사회:녹색성장·녹색기술에도 클러스터가 도움이 되나.

 케텔스: 지구 온난화나 환경 문제 같은 것까지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셰베스:정부는 장기적인 해법을 찾는 데 관심이 별로 없다. 단기적인 문제 해결에만 신경 쓴다.(산스도 동의) 문제 해결책은 기업이 아니라 학계에서 나올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대학(R&D)에 투자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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