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국제부문 차장
설마 했다. 용광로가 되겠다던 이가,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전직 대통령 순례를 긍정 평가했던 이가, 김대중(DJ) 대통령 묘역만 찾는다고 해서 말이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실제로 DJ 묘역만 찾았을 땐 아쉬웠다. 그래도 “경선 중 아니냐”는 주변의 해명에 수긍하긴 했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와의 단일화를 염두에 둔 호남 구애 행보일 수 있어서다.
문 후보가 그러나 다음 날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피해자가 잊는다고 해서 (통합이) 되겠느냐. 과거 군부 독재, 권력을 뒷받침했던 공화당·민정당이 이름을 바꿔 지금의 새누리당 아니냐”라고 큰 소리치는 걸 보곤 씁쓸했다. 1990년대 말부터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과 박 후보 사이에 얽힌 인연들이 떠올랐다.
다 알다시피 DJ는 ‘유신 본당’인 JP(김종필)와 손잡았다. 5·16 쿠데타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첫 비서실장인 TJ(박태준)도 함께였다. 임기 5년 중의 대부분이랄 수 있는 4년4개월간 총리가 JP와 TJ, 그리고 민정당 출신 이한동이었다.
DJ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근대화가 꿈만 같았을 때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준 공로가 지대했고 그것을 이룩했다”고 평가했다.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명예회장도 맡았다. 퇴임 후인 2004년 박 후보가 “아버지 시절에 많은 피해를 보고 고생한 것에 대해 딸로서 사과한다”고 하자 “과거 일에 대해 그렇게 말해주니 감사하다”고 했었다.
노 전 대통령도 한때 박 후보를 잘 봤다. 후보 시절인 2002년 “확실한 원칙을 보여 호감을 갖는다”고 말했다. 이듬해 조각(組閣) 때 반대 당 소속인 박 후보에게 통일부 장관이 되어 달라고 타진하기까지 했다. 대북 특사설도 끊이질 않았다.
둘 사이가 멀어진 건 2004년 중반부터다. 박 후보가 깐깐한 야당 대표로 떠오른 후다. 과거사 드라이브가 걸렸다.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건 백방으로 했다”는 정수장학회 문제도 그때 재론됐다. 인혁당 재심도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은 “지금 정치적 전선은 과거 유신으로 돌아갈 거냐, 아니면 미래로 갈 거냐”라고 규정했다. 열린우리당은 박 후보를 “유신 공주”라고 조롱했다.
1년 후엔 또 달라졌다. 그해 가을 노 전 대통령은 박 후보에게 대연정을 하자고 했다. “국정을 다 한나라당이 맡아도 국정엔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사실상 공동정부의 총리직을 제안한 거다.
요즘 궁금한 건 이거다. 유신 세력을 중용한 건 DJ였고, 박 후보에게 함께 일하자고 제안한 건 노 전 대통령이다. 문 후보가 DJ 시절은 몰라도 노 전 대통령 시절은 잘 알 거다. 문 후보는 그런데도 새삼 “5·16 군사 쿠데타와 유신 독재의 뿌리를 잇는 정치세력이 지금까지도 이 땅의 주류로 행세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섭지 않느냐”고 분노한다.
박 후보가 박 전 대통령의 딸인 건 모두 아는 사실이다. 유신 독재가 끝난 게 32년 전이니 그 이후 더 책임질 일이 생겼을 리도 만무하다. 과거엔 ‘과거’를 문제 삼지 않더니, 아니 함께 일하자고 하더니 이제 등 돌리는 이유는 뭔가. 5·16과 유신의 핵심 당사자들과 손잡으면서, 박 후보에 대해서는 ‘박정희의 딸’이란 이유만으로 얼굴을 붉히는 것은 또 뭔가. 행여 ‘우리와 함께한 세력만 선(善)’이란 편협함 때문인가.
박 후보가 아버지의 유산을 토양 삼아 성장했으니 선친의 통치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건 옳다. 국가지도자로서 역사 인식 부족을 질책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나 요구하는 쪽도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때 그때 달라서야 누가 신뢰하겠는가.
다시 DJ의 말이다. 2005년과 2006년 박 전 대통령과 박 후보를 향해 한 얘기다. “이해할 건 이해하고 평가할 건 평가하고 특히 이 세상에 안 계신 분에 대해선 예의를 갖고 평가해야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이다”, “선친이 못한 지역화합을 위해 열심히 하라. 나라를 위해 큰 포부를 갖고 잘해보라.”
문 후보는 DJ·노무현 두 사람의 역사 위에 서 있다고 했다. 분명한 건 역사관에서 그는 DJ의 계승자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