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미술관 시대 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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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에 돌입하면서 미술계에도 변화의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잇따라 문을 연 사이버 미술관들이 이런 추세를 잘 보여 준다. 바야흐로 온라인과 오프라인 미술관이 공존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지난 9일 공식 개관한 임직순(1921-1996) 화백의 사이버 미술관(http://www.yimjiksoon.com)은 미술문화의 새 방향을 제시하는 상징적 사례다. 서울 신사동 표화랑이 7개월동안 8명의 인력을 투입해 제작한 이 사이버 미술관에는 임 화백의 작품은 물론 이력과 평론 등 그에 대한 모든 자료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사이버 미술관 시대는 지난해 초 이종상 서울대 박물관장 겸 서울대 미술대학장의 미술관이 개관되면서 본격적으로 열렸다. 이 관장은 자신의 호를 딴 일랑미술관(http://www.illang.co.kr)을 열어 예술세계를 다채롭게 소개하고 있다. 이어 이응노 화백의부인 박인경씨가 이응노미술관(http://www.ungnolee-museum.org)을 개관해 변화를 가속화시켰다.

이들 사이버 미술관은 근래 들어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포털 사이트나 사이버 갤러리, 개인 홈페이지와는 차원을 달리한다. 이들 가상공간이 대부분 작가나 작품을단순 소개하는 초보 수준에 머문다면 사이버 미술관은 작가의 예술세계와 삶을 총체적으로 조명한다.

특히 이번에 문을 연 임직순 미술관은 사이버 미술관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향후 온라인과 오프라인 미술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제작자가 오랜 공을 들인 만큼 내용이 알차다. 모두 600여점의 유작을 수록했으며 논문과 관련서도 새롭게 편집해 누구나 열람하도록 했다. 작가의 기행문, 기록사진, 편지글 등이 실려 있음은 물론이다. 심지어 미완성 작품과 작가가 사용했던 팔레트, 의자 등도 올라 있다.

제작자는 9일 경기도 용인의 가톨릭 공원묘지에서 제막된 임직순 화비(畵碑)의실황 동영상을 담는 한편, 향후 입수되는 자료들을 속속 추가함으로써 콘텐츠를 더욱 풍부하게 할 예정이다.

표화랑이 이처럼 알찬 내용의 미술관을 개관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표미선대표의 남편 서진구(코인테크 대표)씨는 삼성전자와 삼보컴퓨터를 거친 국내 컴퓨터분야의 권위자로 아내의 사업에 조력을 아끼지 않았다. 다시 말해 20여년 화랑 경력을 가진 표 대표와 그 남편의 합작품이 바로 임직순 미술관인 셈이다.

사이버 미술관은 앞으로 빠른 속도로 늘어날 전망이다. 작가 유병엽, 박성태,김용식, 김연규, 김유준씨 등의 사이버 미술관이 개관을 앞두고 준비작업에 한창이다. 이미 개설된 백남준 미술관도 볼만하다.

사이버 미술관은 운영자는 물론 작가, 관람자, 구매자 등에 모두 긍정적 영향을미친다. 운영자는 작가의 콘텐츠를 확보해 활용해서 좋고 작가나 유족은 관련 자료의 분실 또는 훼손 걱정을 덜 수 있다. 관람객은 언제든 질좋은 작품을 감상함은 물론 필요에 따라 작품 구매 문의도 언제든지 가능하다.

표 대표는 "특정인만 보던 작품과 관련 자료를 모든 사람이 공유할 수 있어 시장 확대에 좋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면서 "특히 인터넷에 익숙한 젊은이들을미술애호층으로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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