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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라벤에 쭉정이 된 벼, 이번에 또 잠겨 … “올 농사는 망했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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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전남 곡성군 옥과면 소룡리의 한 과수원. 세 번째 덮친 태풍으로 그동안 떨어진 사과가 더미를 이루고 있다. [곡성=연합뉴스]

제16호 태풍 ‘산바(SANBA)’가 17일 오전 물 폭탄을 퍼붓고 지나간 경남 사천시 서포면 서포 간척지. 반나절 동안 247mm의 집중호우가 내려 간척지의 논 80%(800㏊)가 물에 잠겼다. 정전까지 발생해 배수장도 가동이 멈췄다.

 농민들은 한숨만 쉬었다. 1만6500㎡ 규모의 벼농사를 지어온 이 마을 윤종렬(64)씨는 이미 15호 태풍 볼라벤으로 9900㎡(60%)의 논에서 백수(白穗) 피해를 본 상태였다. 백수 피해는 심한 바람과 침수 등으로 나락이 여물지 못하고 쭉정이가 되는 현상이다. 윤씨의 논은 이번 태풍으로 다시 6000㎡가 침수됐다. 그는 “해마다 논에서 600만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는데 올해는 절반도 못 건지겠다”며 허탈해했다. 서포간척지는 볼라벤 때 30% 정도 침수됐던 곳이다.

 볼라벤과 덴빈에 이어 산바까지 태풍 3 개가 모두 한반도 남부 지방에 상륙했다. 영호남 전역에서 농민들은 “올해 농사는 끝”이라며 아우성이다.

 국내 최대 곡창지대인 전북 김제평야에서 만난 박용운(65·김제군 진봉면)씨의 논 17ha 역시 볼라벤과 산바의 연타를 맞았다. 박씨는 “지난해는 1ha에서 700㎏ 정도의 벼를 수확했지만 올해는 절반에 그칠 것 같다. 올해처럼 태풍이 꼬리를 물고 오는 건 평생 처음”이라며 한숨을 지었다.

 과수 농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7일 오후 울산시 울주군 청량면 울주배 재배지(1만5000㎡). 어른 주먹만 한 배 수백여 개가 땅에 떨어져 있었다. 볼라벤 때도 덜 익은 배 2만여 개를 낙과로 잃었던 곳이다. 과수원 주인 천성중(61)씨는 “20㎏짜리 2500박스를 추석 직전 출하해야 하는데 1400여 박스만 건질 수 있을 것 같다”며 울먹였다. 울산배원예농협에 따르면 이날 태풍으로 울주군 일대 2000여 배 재배농가(1200만여㎡)에서 40% 정도의 낙과가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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