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전환의 이념 '게으름' 찬양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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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쁘시죠" 란 말이 인사말이 돼버린 세상. 그러면서도 왠지 휑뎅그렁한 가슴을 달래려 도피의 꿈을 꾸는 현대인들. '느림' 을 성찰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이유일 게다.

사회학자 정수봉과 여성학자 장미란 부부가 함께 쓴 신간 『바다로 간 게으름뱅이』도 '느림의 철학' 이라는 요즘 유행인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저자들 표현대로 "현기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변하는 한국사회에서 정신없이 내둘린 한 부부의 성찰록" 인 것이다.

하지만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쓴 피에르 상소 류(類) 의 글이 개인적 낭만주의 관점으로 바쁜 현대인에게 '위안' 을 주는 성격이라면, 이 책은 한걸음 더 나아가 "문명전환은 우리들 각자의 일상 속에서 기존의 삶의 양식을 바꿔가는 생활양식 변화운동으로 시작된다" 는 전제 아래 근대성 비판과 미래문명에 대한 논의까지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철학적 담론으로 그치지 않고 '게으름의 권리' 를 찾자며 구체적인 대안과 실천방안까지 제시한다.

예를 들어 저자는 도시를 떠나 살 수 없다면 이 도시를 ▶자연을 느낄 수 있고 ▶보행자 위주며▶현란한 간판 등이 자제되고▶아파트 외의 다양한 주거형태가 존재하는 느림의 공간으로 만들자고 말한다.

삶의 양식도 '자발적 가난' 을 권유한다. 이를 위해 수련.명상의 시간은 필수라고 말한다.

아내인 장씨가 쓴 5장에서 책의 흐름이 끊기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흠이다. 여성 문제 등을 통해 '나눔과 보살핌' 의 대안문화에 대해 다루고자 한 의도는 좋으나 책의 전체 주제와 유기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새로운 생태적 문명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침을 얻기에 부족하다는 것은 아니다.

사진작가 신미혜씨의 철학적 작품들이 글 중간중간에서 휴식을 제공하는 책의 모양새나, 걷기.숲.자전거.낮잠.포도주.할머니.노숙자 등 일상의 소재들을 통해 풀어나간 글쓰기 방식도 이 책을 쉽게 읽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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