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부 해부실에서 무슨일이… '아나토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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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스트' 처럼 초자연적인 악령이 등장하지 않는다. 또 '스크림' 처럼 이유 없는 살인이 연속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9일 개봉하는 독일판 공포영화 '아나토미' 는 '양들의 침묵' 비슷하게 관객을 옥죄게 하는 요소가 있다.

해부를 뜻하는 제목처럼 영화는 하이델베르크 의대의 해부실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피살 사건을 다루며 인간의 광기 속에 숨겨진 두려움의 근원을 파고든다.

'아나토미' 의 공포는 수준급이다. 날카로운 메스로 신체 구석구석을 헤치고 들어가는 부분에선 오싹한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인체의 신경 하나하나, 그리고 뼈 하나하나를 빠뜨리지 않고 박제하는 모습에선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영화는 거기에서 만족했으면 더 좋을 법했다. 유명한 해부학 교수였던 할아버지의 뒤를 이어 뛰어난 의학자가 되려던 의대생 파울라(프란카 포텐테) 가 하이델베르크 의대에서 발생하는 의문사를 추적하면서 빚어지는 전율이 제법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에 생명의 존엄성, 의학의 윤리성, 서구 문명 특유의 비밀결사단이 끼어들면서 영화는 약간 비틀거린다. 드라마의 개연성을 높이는 데 일조한 것처럼 보이나 작품 전체의 긴장감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이 발생한다.

어떤 목적에서도 살아 있는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동원해선 안된다는 주제가 선명해진 대신 공포영화의 특장인 섬뜩한 분위기는 다소 희생된다. 다만 숱한 위험에서도 물러나지 않고 사건을 캐들어가는 파울라의 대담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슈테판 루조비츠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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