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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동 생일 파티했죠, 센터 옥상에선 주민들과 담근 전통장 익어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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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드리’라 불리는 동네인 풍납2동에는 특별한 상징물이 있다. 풍납가로공원 입구에 얼마 전 설치된 동네 상징물 ‘오석’이 그것이다. 주민 화합의 장으로 거듭난 풍납2동 주민센터를 소개한다.

글=김록환 기자 , 사진=김경록 기자

 ‘풍납2동 동민의 날’을 기획한 양호 추진위원장, 김영선 주무관, 최창선 동장(왼쪽부터).

‘공기 좋고 물 맑은 강변 마을 / 모두가 인정 많고 살기 좋은 / 희망이 가득한 동네입니다.’

 오석의 앞면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동민헌장도 있다. 이 오석은 지난 1일 동민의 날 행사 당시 동민들이 직접 기획하고 제작했다. 1985년 9월 1일, 풍납2동이 생긴 후, 27년 만에 처음으로 동의 생일이 만들어진 것이다.

 “요즘에는 이웃끼리도 잘 모르고 지내는 세상이다. 동이 생일을 맞을 때마다 많은 주민이 행사에 참여해 하나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최창선 풍납2동장은 말한다. 주민들 사이에 소통이 적고 주민센터도 그저 등본이나 떼기 위해 형식적으로 이용하는 현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최 동장은 주민에게 주민으로서의 자긍심이 먼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직원들과 함께 동민의 날을 제정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직원들끼리 만든 행사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주민들을 직접 참여시키기로 했다. 곧 뜻이 있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동민의 날 행사 추진 위원회’가 구성됐다. ‘동네 아저씨’였던 양호 위원장을 중심으로 동 상징물·축하공연·전통장 행사와 같은 프로그램이 기획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 어려움에 직면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동은 동이고, 나는 나다’라는 생각을 가진 주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막상 행사에 대한 주민 동의를 받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행정 경험이 적었던 주민들로 구성된 추진위는 동장, 직원들과 끊임없이 회의를 열었다.

 노력의 끝에는 결실이 보였다. 거의 1년에 걸친 노력 끝에 이들은 주민들의 동의를 얻는데 성공했다. 양 위원장은 “동민의 날을 제정하고, 행사를 해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같은 주민들이 설명하자 마음이 조금씩 움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게 주민과 직원들이 하나가 돼 탄생한 첫 동민의 날은 성대하게 개최됐다. 주민 약 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동네 상징물인 ‘오석’이 제막됐고, 자치회관 수강생과 강사가 함께 선보인 축하공연도 열렸다. 행사에 참여한 박춘희 송파구청장은 “동 단위에서 동민헌장을 만들어 선포한 것은 풍납2동이 최초가 아닌가 한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동민의 날 행사를 위해 발로 뛴 사람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풍납2동에서 지난해 6월에 시작된 마을사업 ‘전통장 만들기’가 이번 행사를 통해 첫 선을 보인 것이다. 동민들은 이날 전통장의 달인으로 거듭난 주부 세 명으로부터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전통장에 대해 간단한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이들 세 명은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9호 향온주장 박현숙씨로부터 사사한 전통장 전문가다.

 석명순(59)·권정주(51)·한영란(53)씨는 직접 장을 담그던 시대와는 다소 멀어진 ‘신세대’다. 매번 마트에서 장을 사거나, 시골에서 얻어오기 일쑤였다.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지난해부터 전통장 만들기 강의를 듣기 시작했다. 수차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이들은 이웃집에서 직접 장을 만들어 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석씨는 “직접 전통장을 담글 수 있다는 자부심도 생겼고 남편과 아이들에게 유기농 전통장을 주며 건강도 챙길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들이 만든 전통장은 커다란 장독에 담겨 주민센터 옥상에서 가을 햇빛 아래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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