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월례포럼]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 모두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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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는 외국 자본을 구세주로 생각했다. 실제로 은행이나 여러 기업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7년 전의 일이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한덕수 경제부총리는 지금도 외국 자본의 순기능을 강조하지만 국민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다. 최근 한 여론 조사에선 응답자의 80% 이상이 외국 자본의 지배력이 늘어나는 것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현실이 이런 데도 주류 경제학자나 정부 당국자들은 국민의 우려를 '잘 몰라서'라든지 '21세기 국수주의'로 깎아내린다.

이제는 외국 자본에 대한 맹목적인 숭앙에서 벗어나 국민경제 관점에서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때다. 막연하게 신기술 이전 등 긍정적인 효과만을 강조할 게 아니라 외자가 한국 경제에 미친 해악과 이득을 정확히 따져야 한다. 일자리 창출 등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쳤는지, 외국 자본의 과도 유입과 규제 완화 등이 어떤 부정적 영향을 줬는지 등에 대한 객관적 분석이 시급하다. 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도 경제부총리는 "합법적인 국부 유출은 괜찮다"며 마치 변호사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게 오늘의 우리 현실이다.

외국 자본의 문제점으로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과도한 지배력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가 선정한 세계 500대 기업 중 우리나라 기업은 모두 5개가 뽑혔는데, 이들 모두 외국 자본이 주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국가대표선수가 모두 외국계라는 얘기다. 은행권에 대한 외국 자본의 지나친 지배력 역시 향후 한국 경제 발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외국 자본의 투기적 행태도 문제다. 외국인 투자 가운데 국내에 장기간 머무르면서 일자리에 도움을 주는 직접투자는 얼마 되지 않고, 대부분이 투기적 이익을 겨냥한 포트폴리오 투자다.

직접투자 중에서도 시설투자형보다는 인수합병 방식에 의한 투자 비중이 상당히 높다. 이들은 막대한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들을 헐값에 사서 투기 소득을 챙기고 있다. 그나마 이런 소득에 세금 한 푼 못 매기고 있으니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무제한적으로 외국 자본에 특혜를 주는 나라는 없다. 이 때문에 국내 기업과의 역차별 문제도 생기고 있다. 따라서 규제를 강화함으로써 외국 자본에 대한 특혜를 줄여나가야 한다. 최소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평균 수준으로 규제해야 한다고 본다.

정리=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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