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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국스님 "짝사랑 여대생 생각 떨칠수 없어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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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혜국 스님은 요즘 심각한 자살문제에 대해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돌아오는 오늘이다. 오늘을 최선을 다해서 살면 영원히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다”고 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삶이란 생명의 불꽃이 꺼지면 소멸해버리는 단막극 같은 걸까. 그렇다면 나라는 존재는. 수십 조 개의 세포덩어리에 불과해 죽고 나면 광활한 우주에 한줌 원소를 보태게 되는 걸까. 아니면 영혼이 남아 새로운 여정을 떠나는 걸까. 이런 거창한 물음을 안고 지난달 28일 충주 석종사를 찾았다. 도력(道力) 높은 선승으로 신망이 두터운 혜국(慧國·64) 스님을 만났다.

 스님은 오른손 세 손가락이 없다. 정확하게 말해, 한마디씩만 남아 있다. 젊은 시절 수행에 전념하기 위해 불태웠다. 소지공양(燒指供養), 혹은 연비(燃臂)라고 하는 수행이다. 태백산 도솔암에 들어가 잘 때도 눕지 않는 장좌불와(長坐不臥)를 2년 7개월간 했다. 자살도 기도한 적이 있다.

 결론적으로, 스님은 신통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한데 한마디 한마디가 설득력이 있었다. 스님을 찾은 때는 마침 석 달에 걸친 하안거의 끝자락. 전국 2000여 수행자가 참선 삼매(三昧)에서 깨어나는 시기였다.

 -무엇보다 연비 사연이 궁금하다.

 “20대 초반, 참선이 안 돼 성철 큰스님을 찾았다가 크게 혼났다. 보고 듣는 눈과 귀는 몸뚱이일 뿐 이를 부리는 ‘참나’를 찾아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하루 5000배씩 하라고 하더라. 40일 가량 했다. 무릎 피부가 벗겨질 정도였다. 정말 새로 태어나보자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인간적인 나약함을 이겨내려고 연비를 했다. 이왕 연비한 거, 태백산에 들어가 고행까지 했다.”

 사실 스님이 성철 스님을 찾은 이유는 또 있었다. 스님은 중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다. 어렵게 공부해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가 글쓰기 동아리에서 한 여학생을 짝사랑하게 됐다. 그 생각을 떨칠 수 없어 성철 스님을 찾아갔더니 다짜고짜 “니 가시나 생겼제?”라고 했단다.

 -손가락을 태울 정도면 나약한 게 아니라 모지셨던 것 같다.

 “옛날엔 스스로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다. 누구나 강한 면이 있으면 약한 면도 있게 마련이다. 전체적으로 모든 사람은 완전 평등이다.”

 얘기는 요즘 극심한 자살 문제로 흘렀다. 스님은 “자살을 결심하고 상담하러 오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들에게 ‘태양빛, 숨쉬는 공기, 마시는 물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다’고 강조한다”고 했다. 그런 점을 깨달으면 세상이 달리 보이리라는 기대에서다.

 또 스님은 “자살시도는 자신밖에 모르는 건방진 놈의 짓이라고 혹독하게 욕을 한다”고 했다. 충격요법이다. 그리고 자신의 ‘자살 미수’ 경험을 들려준다. 그러면 많은 사람이 동질감을 느낀단다.

 -참선이 안 돼 자살까지 시도했나.

 “이번 생에서 깨달음은 요원한 것 같다, 다음 생에서 이 공부를 다시 해보자, 하는 생각으로 도솔암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정신 차려 보니 절벽 중간 고목에 걸려 있더라. 종전까지 죽고 싶다는 생각은 어딜 갔는지, 떨어질까 봐 벌벌 떨며 기어 올라왔다.”

 스님은 세속적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은 피해 갔다. 서울대에 진학한 이유, 석종사를 큰 절로 키운 비결 등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인생은 허망하다’는 세속적 감상과 불교의 제행무상(諸行無常) 가르침은 어떻게 다른가.

 “지구, 태양, 은하계 전체가 돌고 있다. 모양 있는 모든 것은 돌아간다. 고정불변인 건 없다. 때문에 제행무상은 나라고 할 만한 게 없다는 제법무아(諸法無我)로 연결된다.”

 -그런 판단을 하는 ‘최소한의 나’는 있지 않나.

 “허공에 벽을 치고 자기라고 하는 거다. 자기라는 그 벽만 허물면 우주 전체에 충만한 나, 우주의 기운을 받아 움직이는 나 를 알게 된다. 이건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평생 공부해야 한다.”

◆혜국 스님

1948년 제주도 출생. 61년 출가. 해인사·봉암사 등에서 수행. 제주 남국선원, 부산 홍제사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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