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국책사업] 이문동 차량기지 성공사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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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가 얽힌 충돌을 조정하려면 유.무형의 만만찮은 비용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을 생략하면 국책사업은 더 큰 반발에 직면하고 심지어 무산될 수도 있다. 철도청이 1천7백억원을 들여 1999년 말 착공한 '서울 이문동 차량기지' 건설공사는 이런 어려운 과정을 극복한 사례로 꼽힌다.

철도청이 이문동 6만6천평 국유지에 전동차 1천여량을 정비할 차량기지를 97년에 건설하려 하자 주민들은 즉각 반대운동에 들어갔다. 시민반대위원회가 차량기지를 땅값을 떨어뜨리는 혐오시설로 규정하자 동대문.성북구 의회 등도 여기에 가세했다.

철도청 관계자들은 2년간 주민.구청.구의회.교육청측과 공식적으로만 81차례 접촉하면서 합의를 이끌어냈다. 매주 한번 꼴로 만난 셈이다. 주민 대표들과 겨우 합의를 하면 이번엔 다른 주민 집단이 "인정할 수 없다" 며 반대운동을 벌이는 일이 되풀이됐다.

협상 과정에서 철도청도 적지 않은 출혈을 했다. 건설부지 중 1만평을 떼어내 학교와 공원녹지용 땅 등으로 내놓았고, 동대문구 쪽엔 3백평 규모의 복지회관과 3백80대 분량의 주차장을 제공하기로 했다.

끊임 없는 대화에다 1백억원 가량의 보상비용을 더 들이고서야 반대운동은 잠잠해졌다. 이해를 조정하는 과정에 해당 지역의 정치인들이 적극 개입한 것도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주효했다.

이 지역 출신 여당 원외위원장들이 나서 철도청과 구청.구의회.주민간 이해의 접점을 찾도록 유도했다는 것을 모두 인정하고 있다.

최근 미국.프랑스.독일의 국책사업을 답사하고 온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박현 박사는 "선진국에서 환경.주민.지방자치단체.중앙정부 사이에 갈등이 생겼을 때 국회의원이나 지역구를 갖고 있는 장관, 심지어 총리까지 직접 나서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 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경우, 문제는 중앙정부와 지역간 이해를 조정하는 역할을 할 수 있는 국회의원들이 지역 이기주의에 눌리는 경향이 크다는 것이다.

원자력환경기술원의 송명재 연구개발실장은 "당장 표 얻기에 급급한 국회의원들이 큰 목소리를 내게 마련인 지역구 일부 주민의 반대 목소리에 편승해 일을 그르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고 아쉬워했다.

宋실장은 "일본.프랑스의 의원들은 폐기물처리장을 수용하는 대가로 받게 될 지역의 보상 이익을 가지고 주민을 적극적으로 설득해 재선하는 경우가 많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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