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차 팔리나] 대우차-GM, 만남·결별 또 만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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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자동차와 미국 제너럴모터스(GM)가 결별 10년만에 다시 손을 잡을 것인가. GM이 한국 자동차회사와 첫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72년으로 당시 신진자동차와50대50 지분합작 방식으로 GM코리아(자본금 185억원)를 출범시킨 뒤 시보레, 레코드등의 승용차와 트럭.버스 등을 생산하면서부터.

76년 신진의 경영난으로 산업은행이 지분을 인수했고 회사명도 새한자동차로 변경됐으며 지난 78년 대우그룹이 산업은행의 지분을 인수, 경영권을 넘겨받아 김우중(金宇中)씨가 회장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83년 회사명도 대우자동차로 바꿨다.

대우차는 70년대말부터 GM의 자회사 오펠로부터 `로얄' 시리즈를 들여와 80년대까지 맵시와 함께 주력차종으로 삼았고 86년 GM과 공동으로 4억3천만달러를 투자해월드카 르망을 개발하는 한편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으로 첫 수출에도 나섰다.

그러나 90년대로 접어들면서 양측의 갈등이 표면화됐다.

GM은 대우차가 자동차 생산에만 주력하지 않고 회사 확장에만 몰두하고 있다고불평했고 티코를 개발하면서 일본의 스즈키와 손잡은데도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냈던것. 대우차도 GM측에 수출권을 넘겨달라고 요구했으나 거절당했고 증자 요구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특히 김 회장의 `세계경영'에 따른 동구권 진출 추진과 GM의 반대도 갈등을 증폭시켰다.

결국 대우차는 독자경영에 나서기로 했고 양측은 지난 91년 10월 GM의 50% 지분을 전량 대우차로 넘기는데 합의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당시 이를 `실패한 결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대우차와 GM은 1년여에 걸친 자산평가를 거쳐 합작종료계약 및 주식매매계약을체결했고 92년 10월 결별을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양측은 이후로도 GM의 부품 자회사인 델파이에 대한 부품 공급과 대우차부품계열사인 대우기전에 대한 델파이의 지분 참여를 끈으로 협력을 지속했다.

반면 경쟁도 치열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95년 동구권 진출의 발판인 폴란드의 FSO 공장을 놓고 벌인 첨예한 인수전으로 결과는 대우차의 승리였다.

대우차와 GM이 다시 진지하게 만나게 된 계기는 IMF 사태. 양측은 당시 김태구 대우 구조조정본부장과 앨런 페리튼 당시 GM코리아 사장이협상 창구가 돼 99년 2월 전략적 제휴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교환했으며 GM 본사관계자들도 한국을 드나들며 대우차 공장에 대한 실사를 벌이기 시작했다.

진전되는 듯 했던 협상은 GM의 파업 돌입, 기아차 국제입찰, 삼성차 빅딜 등 국내외 요인으로 사실상 중단됐고 GM을 통한 대규모 외자 유치로 그룹 구조조정을 단번에 해결하려던 대우의 계획은 난관에 봉착했으며 결국 유동성 위기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GM은 99년 8월 대우차가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발빠르게 이사회 동의를얻어 일괄인수를 추진하기로 하고 정부와 채권단 등에 12월 공식 인수를 제안했다.

그러나 우리측은 GM 뿐 아니라 포드, 현대차 등도 대우차 인수에 관심을 보이자지난해 2월 입찰제안서를 접수했고 6월 가장 많은 금액을 써낸 포드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 GM은 `대우차 인수'의 문턱에서 또한번 고배를 마셨다.

GM은 포드가 9월 중순 인수 포기를 선언하자 10월 곧바로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한 뒤 인수제안서 제출은 차일피일 미뤄왔다.

따라서 뒤늦게 시작한 이번 협상이 `성공한 결혼'으로 이어질지 세계 자동차 업계가 주목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강의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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