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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앞 도서관을 기다리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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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후남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박원순 후보의 집 내부가 사진으로 공개된 적이 있다. 줄지어 늘어선 책장에 책과 자료가 빼곡히 꽂혀 있는 사진이다. 솔직히 감탄보다 한숨이 먼저 나왔다. 지금처럼 정리하기까지 점점 늘어가는 책 더미와 씨름했을 과정이 남의 일 같지만은 않아서다. 책씨름은 대단한 장서가나 독서광만 겪는 일이 아니다. 필요할 때마다 서너 권씩 사다 보면 어느새 책장이 넘쳐나게 마련이다. 할 수 없이 겹쳐 쌓아두기라도 하면 책의 효용이 떨어진다. 제때 책을 찾지 못해 같은 책을 또 사기도 한다. 그렇다고 무한정 책장을 늘릴 수도, 그에 맞춰 집을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몇 해 전부터 도서관을 기웃거리게 된 건 이런 개인적인 이유에서다. 따끈한 신간이라면 서점으로 달려가는 것이 빠르다. 특정 주제에 여러 권을 참고용으로 훑어본다면 얘기가 다르다. 게다가 주제별로 분류된 도서관의 서가에선 미처 생각하지 못한 참고서적을 발견하기도 한다. 도서관 밖으로 책을 빌리기도 쉽다. 신분증만 있으면 곧바로 대출카드를 만들어 준다. 요즘 도서관의 서비스는 꽤 섬세하다. 몇몇 곳은 인터넷으로 신청해 가까운 지하철역에서 책을 빌리고 반납할 수도 있다. 자리 독점을 막기 위해 일반열람실에 좌석지정제를 도입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모든 서비스가 무료다. 근대 시민사회 이후로 ‘공공’도서관이라는 개념이 정립된 덕분이다.

 문제는 이런 도서관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국내의 공공도서관은 인구 7만6000여 명에 한 곳꼴이다. 미국이나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인구 1만 명 남짓마다 공공도서관이 하나씩 있는 영국이나 독일과는 견줄 필요도 없다. 이는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가 2008년 기준으로 집계한 수치다. 최근 서울시가 인용한 통계는 더 열악하다. 서울의 경우 인구 9만 명에 한 곳꼴이다. ‘우리 동네 도서관’ 운운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

 올 10월 말 서울시 옛 청사를 탈바꿈시킨 ‘서울도서관’이 문을 연다. 도심에 대형 도서관이 새로 들어서는 것 자체가 상징적 사건이다. 듣자니 이 도서관의 기능은 여느 도서관과 좀 다르다. 이른바 ‘대표’ 도서관이다. ‘최고’나 ‘최대’라는 얘기가 아니다. 열람실은 400석이 채 못 되고 장서수는 20만 권쯤이다. 40만 권이 훌쩍 넘는 정독도서관이나 남산도서관에 한참 못 미친다. 그런데 이런 큰 도서관의 책을 도서관끼리 주고받아 집 가까운 작은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다면 어떨까. 대표 도서관은 이처럼 다른 도서관과 연계해 종합 도서관 정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도서관 협력의 지렛대인 셈이다.

 최근 10년 새 서울 도심은 괄목상대할 변화를 겪었다. 청계천에 물이 흐르고, 광장이 두 곳이나 생겼다. 교육과 문화의 가장 기본적인 인프라라는 점에서 도서관은 그 못지않은 변화를 세상에 가져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