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금고’ 스위스 검은돈 추적자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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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검은돈의 종착지’로 유명했던 스위스가 ‘검은돈 사냥꾼’으로 거듭나고 있다.

 스위스의 적극적 태도는 지난해 아랍의 봄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연합(EU) 국가들은 지난해 이집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가 물러난 지 한 달 이상 지나서야 그의 자산을 동결했다. 하지만 스위스는 무바라크 하야 30분 만에 스위스에 있는 그의 모든 계좌를 묶어버렸다. 튀니지 벤 알리의 자산도 축출 닷새 만에 동결했다.

 다른 국가가 이집트와 튀니지의 법적 서류 미비를 이유로 독재자 자산 환수에 시간을 끌고 있을 때 스위스는 직접 당국자를 해당 국가에 파견해 법률 지원을 했다. 또 무바라크의 추가 은닉 자산을 찾는 데에만 경찰관 20여 명을 투입, 3억 스위스프랑(약 3570억원)을 추가로 확보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스위스의 적극적인 태도는 아이티 당국이 독재자 장 클로드 뒤발리에를 기소하는 데 실패, 2010년 동결했던 자산 500만 달러를 그에게 고스란히 돌려줄 처지에 직면했던 것이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당시 아이티 대지진이라는 대재앙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독재자의 도피자산을 순순히 내놓을 수 없었던 스위스는 은닉자산의 본국 송환을 보다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법안을 만들었다. 지난해 2월 발효된 일명 ‘뒤발리에 법’이다.

 이는 검은돈 형성이 글로벌 경제 에 악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국제사회의 우려를 반영한 조치이기도 했다. 세계은행과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조사 결과 1995~2010년 횡령과 뇌물 등 부패 관행으로 인한 개발도상국의 손실액은 매년 200억~400억 달러에 이르며, 이 가운데 환수된 금액은 50억 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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