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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F] 할리우드 영화만 영화인가

중앙일보

입력

서울.부산.광주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 전세계 영화제에서 주목 받은 작품을 보여주는 영화 잔치가 동시 다발적으로 열린다면? 혹자는 고개를 갸웃거리겠지만 실제로 그런 자리가 마련된다. 8월 27일부터 3주 동안 울산.청주 등 전국 10여개 도시에서 동시에 개최되는 '페스티벌 오브 페스티벌스' (이하 FOF) 가 그것이다.


칸 .베를린.베니스 등 3대 영화제는 물론 로테르담.로카르노.몬트리올.선댄스 등 유수의 영화제에서 화제가 됐던 서른다섯 편이 상영된다.

지난 1~3년간의 작품을 주로 모아 시차상으로 약간 늦은 느낌은 있지만 각종 영화제에서 검증된 영화를 집중적으로 보여주는 까닭에 영화팬들이 모처럼 스크린의 미학에 흠뻑 빠져들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예컨대 1999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 남.녀 주연상을 휩쓴 브루노 뒤몽 감독의 '휴머니티' 를 만날 수 있다. 프랑스 북부의 한 경찰이 어린 여자 아이 피살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가치를 캐들어간 드라마다.

깔끔한 영상과 상큼한 얘기로 선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란 영화도 소개된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올리브 나무 아래서' 등에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과 함께 작업했던 자파 파나히 감독의 '거울' 이다.

최근 국내 개봉됐던 '천국의 아이들' 과 비슷하게 이제 막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소녀의 눈을 통해 남녀.신분 차별 등 이란의 사회적 이슈를 사실적으로 포착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윌로스와 그로밋' '치킨 런' 등을 제작했던 영국 아드만 스튜디오의 작품을 권할 만하다. 비록 단편이긴 하지만 점토인형을 이용해 영화의 한장면 한장면을 정성스럽게 찍은 클레이메이션의 묘미가 담긴 열한 편이 상영된다.

또 프랑스의 샛별로 떠오른 프랑수아 오존 감독의 장편과 단편을 일목요연하게 감상하는 기회도 있다. 99년 베니스 영화제에 진출했던 스릴러 '크리미널 러버' 와 98년 칸영화제 비평가 주간에 초청됐던 코미디 '시트콤' 등이 공개된다.

이밖에도 아이보리코스트.슬로바키아.브라질 등 평소 쉽게 접할 수 없는 각국의 다양한 예술영화가 준비됐다.

FOF의 특징은 지방에서도 출품작 전체를 즐길 수 있다는 점. 전국 21개 스크린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하루 다섯 편씩 일주일에 서른다섯 편을 소화하고, 나머지 2주 동안 요일별로 반복 상영할 예정. 굳이 서울로 오지 않고도 품격 있는 영화를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상업성이 강한 할리우드 영화에 편중된 관객에게 각양각색의 영화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90년대 후반 이후 급증한 각종 영화제를 통해 고급영화가 활발하게 소개됐지만 일정.장소 등의 이유로 일반인이 부담 없이 감상하기엔 한계가 분명했다.

이번 FOF는 유럽 최고의 예술영화 전문배급사인 셀룰로이드 드림스가 한국의 퍼시픽 엔터테인먼트에 미니멈 개런티(영화 수입사가 흥행 수익과 관계없이 외국 배급사에 지불하는금액) 없이 매년 서른다섯 편을 공급하기로 계약해 성사됐다.

할리우드에 대항하는 국제적 네트워크를 결성한 것. 양사는 향후 미국측 파트너도 확보할 방침이다.

주최측은 현재 구축 중인 인터넷 사이트(http://www.cinemasea.com)(http://www.cinemasee.com)를 통해 영화제 기간중 평론가와 관객의 반응을 알아보고, 이중 열 편을 선정해 일반 극장에서 개봉할 계획. 영화제가 열리는 동안 감독.배우를 다수 초청해 열기를 높일 작정이다.

▶FOF 기획 전영택씨

"이번달 우리 극장 방구미는 이렇게 짰어. " "우리 영화사에선 덴삐끼를 인정할 수 없다. "


영화 배급업자 사이에서 흔하게 주고 받는 대화다. 여기서 방구미(番組) 는 일반극장에서 상영할 영화의 프로그램을 짜는 일, 덴삐끼(天引き) 는 극장측에서 배급사에 전달할 수익 가운데 간판.전단 등에 들어간 경비를 제외하는 것을 가리킨다. 뿐만 아니다.

"올해 몸비는 별로 좋지 않았어. " "저 극장은 아시바가 튼튼하지 않아. " 등등. 몸비(物日) 는 방학철.추석 연휴 등의 극장가 성수기를, 아시바(足場) 는 영화사.극장 등의 경영상태를 뜻한다. 쉬운 우리 말이 있는데도 영화계에선 이렇듯 일본식 은어를 밥 먹듯 쓰고 있다.

지난 3월 발족한 한국영화배급개선위원회(위원장 최용배) 가 이같은 일본식 용어를 순화하는 작업에 나섰다. 극장가에서 통용되는 일본식 어휘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일단 배급 관련 용어를 정리하고, 차후에 촬영현장.마케팅 분야의 은어도 알기 쉬운 우리 말로 바꿀 생각이다. 영화 전공 대학원생을 뽑아 자료 취합에 나섰고, 국어학자들에게 자문해 적확한 한국말을 찾기로 했다.

최위원장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관례적으로 쓰는 말이 너무 많아요. 크게 보면 한국영화의 주체성을 찾는 일이지요" 라고 말했다.

건설현장 못지 않게 일본어가 남용되는 영화계의 인습을 고쳐보겠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실천. 애써 고친 말을 쓰지 않으면 무용지물이지 않은가. 그는 연말쯤엔 배급업계에서 일본말이 힘을 잃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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