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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잔과 졸라의 우정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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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회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후기인상파 화가 폴 세잔과 자연주의 문학의 거장 에밀 졸라는 같은 고향(엑상프로방스)에서 물장구를 치며 자라난 둘도 없는 친구 사이였다.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로 파리에서 살다가 13살 때 엑상프로방스로 전학온 졸라는 특유의 말더듬는 버릇때문에 악동들의 놀림감이 되지만 그 때마다 학년은 어리지만 배짱이 있던 세잔이 졸라의 편을 들어 준다.

그러던 어느 날 에밀은 고마움의 표시로 사과 한 바구니를 들고 폴의 집으로 찾아가고 이 때부터 두 소년의 우정은 시작된다.

이후 두 사람은 진짜 친구가 되어 이른 아침 서로의 창문에 돌멩이를 던져 잠을깨우는가 하면 학교를 빼먹고 들판으로 달려가 마을을 가로지르는 아르크강에서 물놀이를 즐긴다.

이렇게 그들의 어린 시절은 웃음과 장난이 넘치고 유쾌한 물놀이가 흐르는 아름다운 우정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다.

이후에도 엑상프로방스의 아름다운 자연은 두 사람이 공유했던 삶의 증거들로세잔에 의해 그려졌고, 졸라에 의해 묘사됐다.

〈책 읽어주는 여자〉의 작가이자 역시 엑상프로방스 출신인 레몽 장이 쓴 〈세잔, 졸라를 만나다〉(여성신문사)는 이 두 위대한 인물의 우정이 어떻게 시작됐고무엇때문에 결별하게 됐는지를 역사적 사실에 기초해 더듬어간 일종의 전기문이다.

졸라가 어머니를 따라 파리로 떠난 뒤에도 두 사람의 우정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지속되지만 졸라의 소설 〈작품〉 출간을 계기로 우정은 깨지고 두 사람은 죽을때까지 만나지 않는다.

졸라는 논픽션의 혐의를 담뿍 안은 〈작품〉이라는 픽션에서 세잔과 꼭 닮은 인물을 자살에 이르는 실패한 화가 랑티에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 책을 읽은 세잔은 모든 감정을 생략한 채 예의바르고 간결한 편지로 결별의 인사를 대신한다.

하지만 졸라 자신은 이렇게 설명한다. "랑티에는 무능한 인물이 아니라 자연 전체를 화폭에 옮겨놓으려다 그로 인해 죽는, 너무 커다란 야망을 품은 창작인이다" 어쨌든 이 소설은 허구와 현실의 애매한 관계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데완벽한 모델을 제공했고 허구가 갖는 근원적 권리에도 불구하고 해석의 여지를 지나치게 남겨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잔인한 픽션'이 되고 말았다.

〈작품〉으로 금이 간 두 사람의 우정은 이후 '드레퓌스 사건'으로 인해 완벽하게 끝장나게 된다.

프랑스 지식인 사회를 둘로 갈라놓았던 드레퓌스 사건 때 '나는 고발한다'라는글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졸라는 정의와 공화정의 상징으로 부각된 반면 세잔은 반드레퓌스 쪽에 서서 부르주아적인 보수 성향을 보인다.

이 사건 이후 세계적인 명사가 된 졸라와 달리 만년에 고향인 엑상프로방스에처박혀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했던 세잔은 졸라의 사망 소식을 알리는 하인에게 "꺼져, 날 내버려둬!"라고 외친다.

세잔과 졸라의 보기 드문 우정을 두 사람이 주고 받은 편지와 당시 신문기사 등을 인용하며 소개하는 레몽 장은 사람 사이의 관계의 미묘함에 대해 특유의 섬세한감각과 담담한 필치로 엮어나간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곳곳에 적절하게 자리잡은 세잔의 그림들이 책의 품격을 높여 준다.

(서울=연합뉴스) 정 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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