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청력 여든까지 간다 … 난청, 조기 치료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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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3학년 강슬기(16·가명·여·경기도 용인시)양은 ‘자전거’를 ‘나넌거’로, ‘수박’을 ‘두박’으로 발음한다. 어릴 때 난청을 제때 치료하지 않았던 탓이다. 슬기양은 양쪽 귀가 안 들릴 정도로 심한 난청은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정확하게 듣고 발음하는 게 중요하다며 적극적인 치료를 권했지만 부모는 별문제가 없을 거라고 여겼다. 아이가 가끔 되묻기는 해도 가족과 얘기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슬기양은 말을 정확히 배울 수 있는 시기를 놓쳤다. 지금은 학습발달이 남보다 조금 더디고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호소한다.

딸랑이를 흔들거나 큰 소리로 불렀는데도 아이가 반응이 없으면 난청일 수 있어 검사가 필요하다. [김수정 기자]

 사람의 귀는 태어날 때 가장 건강하다. 신생아인데도 달팽이관 크기는 성인과 같다. 태아 때 청력이 완성된다는 얘기다. 그런데 신생아 1000명 중 한두 명은 양쪽 귀가 모두 들리지 않는 고도난청을 안고 태어난다. 귀뚜라미 소리(30㏈)를 들을 수 없는 가벼운 난청까지 포함하면 1000명 중 3~5명에 이른다. 문제는 난청이 언어 습득 이전에 발생하면 평생 장애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기 발견과 치료가 중요한 이유다. 분당서울대병원 이비인후과 구자원 교수는 “가벼운 난청이라도 영·유아에겐 말을 배우는 데 장애가 된다”며 “잘 못 듣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학습에 지장을 받는다”고 말했다. 9일은 대한이과학회에서 정한 ‘귀의 날’이다. 귀의 날을 맞아 ‘세 살 청력, 여든 간다’를 주제로 어린이 청력 건강을 소개한다.

 어릴 때 난청을 발견하지 못해 평생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많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10세 미만 어린이 난청 환자는 연간 2만여 명에 이른다. 구자원 교수는 “신생아 때 난청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 문제가 없더라도 생후 1년 때 다시 한 번 검사를 받는 게 좋다”고 말했다. 어린이에게 난청이 생기는 이유는 절반 이상이 유전 때문. 나머지는 산모가 바이러스성 감염을 예방하지 못했거나 난산을 했을 때 발생한다. 신생아가 조산아·저체중아로 태어나면 달팽이관 내의 청각세포가 손상 돼 난청이 생길 수 있다. 저산소증 때문이다. 신생아 황달이 심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황달은 혈중 빌리루빈(쓸개즙 색소를 이루는 적갈색 물질)이 높아지는 질병인데 이 물질이 청신경에 영향을 미쳐 난청이 된다.

 신생아 때 별문제가 없더라도 유전성 난청 중 3분의 2는 자라면서 나타나므로 방심해선 안 된다. 또 영·유아기 때 중이염과 뇌막염·고열을 동반한 질환을 앓았다면 귀에 세균이 감염돼 난청이 생길 수 있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가 소리에 반응을 잘하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난청은 뚜렷하게 보이는 증상이 없어 알아채기 어렵기 때문이다.

 유전이 아닌 태아의 난청은 산모가 조금만 신경 쓰면 예방할 수 있다. 임신 초기에 풍진이나 수두를 앓으면 태아에게 난청이 생기기 쉽다. 풍진·수두균은 태아의 귀 조직에 쉽게 침범한다. 구자원 교수는 “태아가 12주가 되면 귓바퀴와 고막·달팽이관에 이르는 청각구조가 완성되고, 16주가 되면 청각신경이 뇌에 연결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임신 전에 반드시 풍진과 수두 예방주사를 맞아야 한다.

 아이가 클 때는 소리에 반응하는지 살펴야 한다. 세브란스병원 이비인후과 최재영 교수는 “아이가 의사소통을 잘 못하면 인지·지적능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고집이 세지고 날카로워진다”며 “딸랑이를 흔들거나 큰소리로 불렀는데도 반응이 없을 때는 청력 이상을 의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신 전 풍진·수두 예방주사 맞아야

아이가 고개를 가누기 시작하는 생후 3개월이 됐는데도 큰소리에 무관심할 때는 난청을 의심해야 한다. 생후 6개월이 됐을 때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고, 소리가 나는 위치를 판단하지 못하면 난청일 위험이 크다. 꽥꽥 소리를 지르며 주의를 끌거나 옹알이를 하지 않아도 난청일 수 있다. 구자원 교수는 “말문이 늦게 트인다고 여겼다가 뒤늦게 병원을 찾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난청은 일찍 발견·치료하면 별문제 없이 말을 배우고 사고능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

 언어능력평가에서 매번 상위 10%에 들어 또래보다 뛰어난 언어능력을 보이는 네 살배기 김도희(여·경기도 광명시)양. 도희양은 양쪽 귀가 들리지 않는 심각한 난청으로 태어났다. 신생아 때 청력 선별검사를 받고 양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진단을 받자 부모는 아이가 영원히 듣지 못할 거라며 좌절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인공달팽이관 이식(와우 이식)을 받고 언어 치료를 꾸준히 해 지금은 듣고 말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보청기·인공와우로 재활하면 문제없어

이처럼 영·유아 때 생긴 난청은 빨리 발견해 재활치료를 해야 한다. 생후 1~2년은 단어를 습득해 언어로 발달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시기다. 정상 청력을 가진 아이는 생후 1년 때 ‘엄마’처럼 간단한 단어를 말할 수 있다. 그동안 소리와 언어를 듣고 반복학습한 결과다. 구자원 교수는 “생후 6개월 전에 난청을 발견해 보청기로 재활치료를 받으면 정상 아이와 언어발달에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보청기를 써도 난청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인공와우를 이식해 청각재활을 하면 된다. 인공와우 수술은 개인 차가 있지만 5세 이전에 해야 언어능력과 학습발달이 뒤처지지 않는다. 수술 후에는 들리는 소리와 말하기가 일치하도록 교육하는 재활치료가 필수다.

※대한이과학회는 8일 서울반포한강공원 야외무대에서 ‘귀사랑 콘서트’를 개최하는 등 국민의 귀 건강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문의 02-555-5058.

이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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