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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근·대약진운동·하방 … 중국이 잊고싶어하는 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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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옌롄커 작가는 요즘 연말 출간을 목표로 중국 현실을 다룬 장편 소설을 집필 중이다. 그는 “한국의 자연환경이 아름다워 한국에서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웃었다. [베이징=김효은 기자]

‘글쓰기의 반역자’. 중국 작가 옌롄커(閻連科·54)는 최근작인 장편소설『사서(四書)』(자음과 모음)의 서문에 이렇게 썼다. ‘중국식 문학’에 위배되는 문장을 많이 썼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작품은 1950년대 중국의 대약진운동과 대기근을 다뤘다는 이유로 중국에서 판매 금지됐다. 대신 지난 4월 한국을 시작으로 홍콩, 대만 등지에서 출간됐고, 전세계 20여개국에 판권이 수출됐다.

 중국문학 번역가인 김태성씨는 “옌 작가는 출간하는 족족 판매금지를 당할 정도로 중국 정부에 비판적이다. 지금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중국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에 근접한 작가”라고 평했다. 30일 중국 베이징국제도서전에 참석한 그를 만났다.

 -계속해서 출간이 금지되는 작품을 쓰고 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2005)가 처음 금지되고 나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 논쟁적인 작가가 됐고, 어떤 책은 정부와 협상을 통해 수정본을 펴내기도 했다. 수정 출판을 하면서 스스로 퇴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 작가는 두 개의 길이 있다. 출간이 허락될 것을 고려해서 쓰느냐, 아니면 쓰고 싶은 것을 쓰느냐. 최근작인 『사서』는 그 여부를 생각 안하고 완전히 자유롭게 쓴 작품이다. 문학의 기능이 다양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인류의 기억을 진실하게 지켜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 처음 작가의 이름을 알렸던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마오쩌둥이 내세운 혁명의 언어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인간적인 욕망의 언어로 전락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판매금지됐다. 『딩씨 마을의 꿈』 역시 1950년대 매혈운동을 비판적으로 그렸다. 최근작 『사서』는 사상 개조를 위한 지식인 포로수용소가 배경이다. 당대 지식인이 겪었던 탄압과 그들의 기회주의적 처신을 4개의 관점으로 서술했다.

 이 작품들은 1950~60년대 중국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중국은 50년대에 정부 주도로 강철생산량을 늘리는 ‘대약진운동’을 실시했다. 하지만 실패로 돌아갔고 대기근을 맞는다. 마오쩌둥은 실패를 덮고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 극좌 사회주의 운동인 ‘문화대혁명’을 벌인다. 작가에게 이 일련의 시기는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중국이 가장 비참했고 황폐한 시기였으며, 중국 사회가 가장 잊고 싶어하는 시기다. 나는 그 시기를 어떤 수치보다는 인물을 통해 감성적으로 되살려내고 싶었다. 『사서』의 경우, 1950년대 우파로 몰린 지식인 수천 명이 농촌 마을에 수용된 것을 소설화했다. 이들은 강철생산량을 채우기 위해 극심한 노동에 시달렸다. 3년간의 기근이 왔을 때 지식인을 포함해 3000만~4000만명이 죽었다. 배고픔으로 동료의 인육을 먹는 것을 묘사했지만 현실은 이보다 훨씬 잔혹했다.”

 -왜 아픈 역사를 기록해야 하나.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다룬 작품이 중요하듯이, 인류가 심각한 고통과 비참함에 직면했던 시기를 문학으로 다루는 것은 가치가 있다. 잊혀진다면 또 다시 반복될 수 있다.”

 -현재 중국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경제 발전은 빠르게 되고 있는데, 정치와 문화의 발전은 그 속도가 더디다. 특히 이런 모순을 지적해야 할 지식인 사회에 병폐가 많다. 『사서』에서 교수나 종교인들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영혼을 파는 모습은 요즘 중국 지식인의 모습을 반영한다. 반면 고문과 협박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는 ‘학자’라는 인물은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지식인의 모습이다. 암담하고 어두운 세상에서 희망을 상징한다.”

 -비단 중국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지식인의 역할, 기아, 인간의 참회, 사랑, 종교 등은 전 인류의 공통된 주제다. 『사서』에서도 보편성을 주려고 일부러 인물들의 이름을 쓰지 않고 ‘학자’ ‘작가’ ‘종교’ 등 직업으로 표현했다.”

 옌 작가는 다섯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한국 독자들의 문화 수준이 높아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최근 한·중·일의 영토 분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세 나라의 지도자들이 제대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한 나라가 강해서 힘으로 밀어붙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민간의 활동보다는 지도자들의 소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옌롄커=1958년 중국 허난성 출생. 중국 해방군예술대학 문학과 졸업. 루쉰문학상·라오서문학상 등 20여개 문학상 수상. 현재 한국에는 3편의 소설과 1편의 산문집이 번역되었다. 올 연말엔 문화대혁명 속에서 사랑을 탐닉했던 남녀를 그린 『물처럼 단단하게』(2001)가 번역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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