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지식] 마음을 위로받기엔, 바람 부는 날이 좋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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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이병률 지음, 달
232쪽, 1만3800원

어디를 펼치든 당신은 지구의 어느 한 곳에 떨어져 있을 것이다. 바람이 부는 대로 쓸려가듯 내려앉듯 그렇게. 세상의 시간과는 떨어져 앉은 듯한 그곳에서 마음은 평온해질 것이다.

 시인이자 방송작가인 이병률이 『끌림』에 이어 7년 만에 내놓은 여행산문집인 이 책은 저자가 수없이 쌌다 푼 여행보따리의 흔적이다. 보따리의 끈이 풀쩍 풀리자, 낯선 땅들의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를 스쳐간 바람의 냄새이자, 위로의 기억이다.

 그는 말한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위로받기엔 바람 부는 날이 좋다”고. 그렇다면 그의 글에서는 바람이 분다. 마음을 위로받기에 좋을 정도의 바람이.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푹 젖어 있는 마음을 말리거나 세상의 어지러운 속도를 잠시 꼭 잡아매두기 위해 쉬어갈 곳’이 될 만큼.

 그는 말한다. “여행자에게 시간은 돈보다 넘친다”라고. 일상에서 시간에 쫓기며 종종대던 여행자는 낯선 곳에서 조금은 느긋한 마음으로, 조금은 느슨한 시선으로 시간을 누린다. 타임머신을 탄 듯 낯선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이방인의 느린 걸음으로 스쳐가는 순간은 잊고 살았던 혹은 이런저런 핑계나 이유로 묻어뒀던 예민한 촉수들이 살아 숨 쉬게 한다. 그래서 이런 깨달음도 얻는다.

 “낯선 나라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배우게 되는 말은 ‘물’인 것 같다. 그 다음은 ‘고맙다’라는 말. ‘물’은 나를 위한 말이고 ‘고맙다’라는 말은 누군가를 위한 말. 목말라서 죽을 것 같은 상태도 싫고 누군가와 눈빛도 나누지 않는 여행자가 되기는 싫다.”

 그는 말한다. “인간의 모든 여행은 사랑을 여행하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 안에서 여행하게 되어 있다. 사랑을 떠났다가 사랑으로 돌아오게 되어 있다”고.

 그래서 그는 여행에 게으르지 않은 모양이다. 어렵사리 모은 돈을 털어 훌쩍 떠났다 돌아오는 건 어쩌면 그의 이 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사랑하기에는 조금 가난한 것이 낫고 사랑하기에는 오늘이 다 가기 전이 좋다.”

 글은 먼 곳을 돌아 오랫 만에 찾아온 반가운 옛친구처럼 정겹다. 몸은 떠날 수 없더라도 그가 전하는 바람에 몸을 싣고 잠시 이방인처럼 흔들려보는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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