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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정애의 시시각각

손학규의 ‘세 번째’ 경선 보이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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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고정애
정치국제부문 차장

‘또?’ 싶었다. 민주통합당 손학규 후보의 최근 행보 말이다. 한때라곤 하지만 결과적으로 경선을 세 번째 보이콧한 셈이어서다.

 처음은 2007년 3월이었다. 일군의 기자들이 그를 찾아 설악산을 헤매야 했다. 그는 당시 100만 명 이상이 참여하는 국민경선을 추석 이후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당이 이명박·박근혜 후보를 염두에 둔 중재안(8월 21일-20만 명)을 내놓자 설악산에 칩거했다. 그러곤 5일 만에 하산해 “나는 이제 당 밖의 툰드라 동토로 가겠다”고 했다. 그날 탈당도 했다. 그는 경선 룰 때문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모두 알았다. 경선 룰 때문이란 걸.

 같은 해 10월엔 경선을 중단했다. 지역순회 4연전이 끝난 직후였다. 앞서 그는 장외주자 시대를 거쳐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다. 범여권 주자 중 지지도 1위였던 그는 경선 룰 협상 과정에서 여론조사를 50%까지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하다 막판 10%로 양보했다. ‘포용력’을 보인 거다. 하지만 수십만 명의 유령선거인단이 확인되는 등 불·탈법 선거 논란 와중에 4연패를 했고 한동안 경선을 거부했다.

 이번엔 말 많고 탈 많은 모바일 투표 때문이다. 그와 김두관·정세균 후보 진영은 “기호 1(정), 기호 2(김), 기호 3(손)을 택하고 전화를 끊으면 유효표로 인정되지 않는 등 투표가 불공정하게 진행됐다”고 주장했다. 그런 표가 5000~7000표라고 추정했다. 실제론 599표였다. 문제 제기가 경솔했던 거다. 이들은 하지만 고개를 숙이는 대신 경선 복귀 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왜일까. 그의 지지자들은 “오죽하면 우리가 이러겠느냐”라고 했다. 세 번째 경선 보이콧이란 비난을 감수하고라도 해야 할 말이었다는 거다. 사례를 잘못 드는 실수를 했을 뿐 ‘불공정한 경선 룰’이란 주장엔 변함이 없다는 얘기다.

 사실 경선 룰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7년엔 이해찬 후보도 함께 공분했던 사안이다. 올 들어선 이재오·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 경선에 불참하기까지 했다. 손 후보만의, 민주당만의 현상이 아니란 거다.

 요즘 경선은 ‘투표한다’는 행위 이상으로 복잡해졌다. 여론조사로든, 모바일투표로든 국민 참여도를 높이면서 ‘고등수학’ 문제 비슷해졌다. 만일 제주 모바일투표 때 전화를 받았으나 곧 끊은 1만2000여 명을 무효표로 처리하는 대신 투표했으나 기권한 것으로 보았다면 문재인 후보의 득표율은 60%가 아닌 37%가 된다. 의당 결선투표행인 거다. ‘지지하느냐’ ‘선호하느냐’란 질문에 따라 우열이 갈릴 수도 있다.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를 두고 “전화설문조사하는 날짜만 다르게 잡혔어도 정 후보를 이기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2007년 손 후보가 경선 룰에 깐깐했더라면 승부가 달라졌을 거라고 믿는 이도 있다. 어떤 규정을 두느냐,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운명이 바뀌는 거다. 그만큼 장난칠 여지도, 장난쳤다고 의심할 여지도 많아진 거다.

 그런데도 선거에 임박해서야 룰이 정해진다. 검증할 시간은 물론 없다. 2007년엔 후보들이, 이번엔 “선수가 어떻게 룰을 정하느냐”며 당이 정했다. 여든 야든 그랬다. 그때도, 지금도 경선 중단 상황이 벌어졌다. 여야 모두 당 지도부가 암암리에 유력 주자를 돕는다는 의심도 받는다.

 그렇다면 해법은 하나다. 미리 정하는 거다. “가위바위보로 해도 좋으니 방식만이라도 정해달라. 그러면 가위바위보 연습이라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박성민 정치컨설턴트)란 거다. 미국 민주당은 전국위에서 2010년 8월 경선 룰을 확정했다. 지역 경선이 시작되기 1년6개월 전이다. “인구통계학적으로 미국이 달라지고 있다. 2012년 대선까진 괜찮겠지만 2016년을 위해선 근본적인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데니스 아처 경선 룰 위원)는 제안과 함께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아, 그러고 보니 5년 전 당이 지금 하나도 없다. 지금의 당이 5년 뒤에 있으리란 보장이 없다. 다음 대선 때도 이 사달을 또 봐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