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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엔 안전 제일 … 기준금리보다 낮아도 국채로 몰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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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24일 기준으로 국채 3년물 금리는 2.83%. 5년물은 2.93%다. 한국은행 기준금리(3%)를 밑돌고 있다. 기준금리는 말 그대로 시중금리의 ‘기준’이 되는 금리다. 한국은행은 환매조건부채권(RP) 7일물을 사고파는 방식으로 기준금리를 유지한다. 7일짜리 초단기물보다 3년, 5년짜리 채권의 금리가 더 낮은 것은 경제상식에 반한다. 돈 빌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더 비싼 금리를 매기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시장이 앞으로의 경기 전망을 어둡게 보는 데다 한국 국채가 국제시장에서 상대적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투자자가 몰려 금리 하락이 가팔라진 게 원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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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도 국채 금리가 기준금리보다 낮았을 때가 세 차례 있었다. 모두 경기 침체기였다. 2003년 카드대란 이후 경기침체가 본격화하자 당국이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금리가 더 내려갈 것이란 기대감에 2004년 10~11월 3~5일간 금리가 역전됐다. 2008년 3~5월 서브프라임 사태로 미국이 기준금리를 연속으로 내리자 국내에서도 최대 17일간 금리가 역전됐다. 2008년 10월 리먼 사태 이후 국내 기준금리가 급격하게 떨어질 때도 사흘간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금리 역전은 시장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빠르게 정상궤도를 찾아간다. 그런데 이번 국채 3년물과 기준금리의 역전은 7월 6일 이후 한 달 보름 넘게 지속되고 있다. 당초 기대와 달리 경기회복이 지연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성욱 KTB투자증권 채권애널리스트는 “가장 확실한 것은 불확실성(uncertainty)”이라고 진단했다.

 기준금리와 국채 금리의 역전은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유럽에서는 지난해 말 이후 유럽 중심 국가의 단기 국채 금리가 기준금리를 밑돌고 있다. 유로존 우려가 고조됨에 따라 상대적으로 안전한 국가의 국채로 매수세가 몰린다. 현재 독일 5년물과 오스트리아 4년물, 벨기에 3년물, 프랑스 2년물 이하 국채 금리가 유럽중앙은행(ECB)의 기준금리(0.75%)보다 낮다. 영국 국채 2, 3년물도 영란은행(BOE) 기준금리인 0.5% 아래다. 특히 ECB에 비해 기준금리(1.50%)가 상대적으로 높은 스웨덴에선 장기물인 10년물도 기준금리를 밑돌고 있다. 기준금리가 3.50%로 다른 선진국보다 높은 호주에서도 국채 10년물이 기준금리를 하회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채 금리와 기준금리의 역전 현상을 불황의 산물로 보고 있다. 오창섭 메리츠종금증권 채권애널리스트는 “과거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장기불황으로 인해 ‘저성장·저물가·저금리’ 기조가 지속됐다”며 “주요 선진국도 과거 일본의 경험과 유사하게 향후 장기간 저성장과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질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한국 등 신흥국의 경우에는 경기 침체와 함께,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하를 선반영한 측면이 강하다. 이병곤 KB투자증권 채권영업팀 이사는 “시장에서는 올해 최소한 한 번에서 최대 두 번까지 기준금리가 인하될 것으로 본다”며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렸지만 굴릴 곳이 마땅치 않아 국채에 대한 대기 매수세가 아주 강하다”고 말했다. 국채선물시장에서도 외국인을 중심으로 누적 순매수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 김진명 기획재정부 국채과장은 “최근 아시아·유럽계 중앙은행들이 한국 단기물뿐만 아니라 5~10년짜리 중·장기물까지 매수세를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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