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
잘 될 거야 김남미
활짝 열어야 해요. 꽉 잠긴 저 큰문을
해독의 163:1 열릴까 말까 초조해요
미로 속 비밀번호에 밑줄 좍좍 그었어요
답안지 둥실 떠있는 노량진 학원가엔
C 초승달 D 하현달 팽팽히 경쟁해요
신새벽 환경미화원, 오답 몽땅 쓸어가요
공시족 머리 안에 나뒹구는 종잇조각
다 닳은 몽당연필 도돌이표 그리고요
늙으신 어머님 허리 구부정히 휘었어요
책갈피에 접힌 꽃들 부스스 일어서고
바람의 뺨을 맞은 열매가 붉어졌어요
내일은 출근을 해요, 저 높은 빌딩으로
◆김남미=1959년 충북 진천 출생. 2011년 전국시조백일장 입상.
차상
달맞이꽃차 양옥선
시냇물 달빛 가락 귀 활짝 연 노란꽃
마주서면 이슬은 발끝에 구르고
흥겨운 밤의 너름새 풀벌레를 깨운다
손 안의 액정화면 꽃잎을 발송하면
곧 가요 광속으로 도착하는 별빛 문자
찻잔에 끓인 물 붓고 꽃숭어리 띄운다
몇 날을 개여울에 씻은 귀 저리 맑나
기다림은 문밖의 층계를 헤아리고
똑똑똑, 겯는 찻물에 달무리가 번진다
차하
물잠자리 김종호
놔주면 다시 와서 나풀나풀 꼬리치고
살며시 다가가면 삐뚤빼뚤 달아나네.
철없이 따라나서다 물속으로 철퍼덕
이달의 심사평
심각한 취업난 잘 형상화
시적 긴장·완결미 살려야
이 달에 응모된 작품은 4수 이상의 연시조가 많았다. 좀 더 시상을 압축해 시적 긴장을 유발하고 균제미·완결미로 시조의 정형미학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하겠다.
김남미의 ‘잘 될 거야’를 장원으로 올린다. 서술적 전개가 약점이지만 심각한 취업난을 잘 형상화한 작품이다. 163:1이라는 경쟁률이 치열함을 더하고 C 초승달 D 하현달이 경쟁하는 형상적 이미지는 이채롭게 다가온다. 늙으신 부모님의 허리가 휘는 어두운 현실이지만 시인은 “잘 될 거”라는 희망적 메시지를 안겨준다.
양옥선의 ‘달맞이꽃차’는 차 한 잔을 나누기 위해 휴대전화로 친구를 부르는 아름다운 모습이 잔잔하게 그려지는 차향이 서린 작품이다. 김종호의 ‘물잠자리’는 짧은 동시조로, 잠자리를 쫓다 물에 철퍼덕 빠지는 유년기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정황수·김별·홍수민의 작품도 마지막까지 논의됐다.
심사위원=권갑하·이종문(대표집필 권갑하)
◆응모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 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전 응모 자격을 줍니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