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용, 그에게 필이 꽂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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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진 눈, 꼭 다문 입술, 너무나 짙은 눈썹. 그의 첫인상은 여린 듯, 강렬하다. 〈비단향꽃무〉의 우혁, 최민용.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고, 미처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기 전, 그가 우리에게 먼저 잡혔다. 그의 코드명, 나의 새로운 터프가이. 세상을 등진 듯하지만 자신의 순수함을 지키려는 거친 몸짓.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린 이미지. 눈치채지 못하게 성큼 들어와버린 최민용. 그에게 보내는 러브콜.

첫인상에 속았다!
‘말이 없다. 낯선 사람에겐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그에 대한 정보는 쉽게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처럼 당황스럽다. 키 186cm, 최근 5kg이나 빠져 더욱 마른 몸매, 손바닥보다 작은 얼굴. 더욱 얼어붙게 만드는 건 짙은 눈썹과 꼭 다문 작은 입술이 빚어내는 팽팽한 긴장감. 하, 쉽진 않겠군.

여기까진 그를 만나기 전, 그와 얘기하기 전 그에 대한 느낌.그를 만난 지 30분 경과. 아, 보여줄 수 없어 안타깝다. 작게 소리내며 웃는 어설픈 그의 미소, 모델같은 그의 포즈, 얼굴을 다 덮는 가늘고 긴 손가락. 보물상자처럼 조금씩 조금씩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그를 보고 있으면 주사위 게임을 하는 것 같다. 다음엔 뭐가 나올까 궁금해진다. 우혁의 그림자를 서서히 걷어내는 민용, 웃음이 많아지고 말수도 는다. 우리의 주파수는 잡음을 걷어내고 한 곳으로 모아지고 있었다.

보이나요? 그의 장난기
지금은 그에게 터프하다, 남자답다고 하지만 고1 때까지 그는 그다지 남자다운 편은 아니었다. 위로 누나 넷. 어려서부터 아무런 편견 없이 자란 탓에 중성 같았다. 그가 제자리로 돌아온 건 고1 때 만난 담임선생님. ROTC장교 출신의 씩씩한 담임선생님을 보며 멋있다고 생각했고, 걸음걸이와 성격을 흉내내며 지금의 그가 되어갔다.

어디에도 코믹한 이미지는 안 보이는데 카메라 뒤에 숨어 있는 그의 재치는 뛰어나고 행동은 개구장이 같다. 초등학교 때는 코미디언이 장래 희망이었을 정도. 하지만 그의 유머는 분위기에 따라 자연스레 나오는 끼의 일부. 토크박스에 나가도 기죽지 않을 비장의 무기도 있지만, 의도적인 코믹에는 약하다. 또한 매번 꺼내 쓰기 귀찮아 은행에 돈을 안 맡긴 채 책상 속에 쟁여놓고 그때그때 꺼내 쓴다거나, 자장면을 제일 좋아하고, 바텐더가 멋있어 조주기능사 자격증을 따고 싶어하는 엉뚱함도 그의 또다른 면.


진짜 남자, 강우혁을 만나다
촬영하는 날, 압구정동 길거리에서 사람들은 진짜 이름에는 갸우뚱하면서 우혁이란 이름에는 반색한다. 최민용보다 낯익은 이름, 미니시리즈 〈비단향꽃무〉의 반항아, 강우혁. 아버지의 지나친 편애로 상처받고 세상에 무관심한 듯, 내버려두라는 듯 행동하지만, 알고 보면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 겉으론 강한 척하지만 속은 물처럼 투명하고 여리다.

그의 사랑도 마찬가지. 철들 무렵 마음 깊이 사랑했던 여자, 영주가 형의 사랑이 되어도 아무 말도 못한 채 그저 바라만 본다. 그녀를 돌봐달라는 형의 마지막 부탁 앞에 더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리 떠나지도 못하는 슬픈 사랑을 간직해야만 하는 운명. 말이 없고 무표정하고 행동으로 말하는 우혁. 가벼운 남자들 속에서 우리가 갈증냈던 건 바로 이런 남자. 우혁이 빛이 나는 이유다.천우신조, 우혁을 만날 운명


최민용이 우혁을 만난 건 지난해 10월 군대를 제대한 후 잠시 박찬홍 PD에게 인사차 들른 것이 계기. 군대 입대 전 〈신세대 보고-어른들은 몰라요〉에 출연하면서 만난 박 PD는 그에겐 특별하다. 우수에 젖은 눈빛과 서 있어도 그림이 되는 그를 일찌감치 눈여겨본 박 감독은 군대 제대하고 돌아온 그에게 덜컥 큰 짐을 하나 던져줬다. 강우혁. 그와 비슷했기 때문에 욕심이 났고, 쉽사리 거절하지 못했다. 그것이 바로 취미라고만 생각했던 연기를 전문 연기자라는 직업으로 바꿔버리고, 동대문에서 옷장사를 하려 했던 민용의 맘을 접게 만든 전환점. 처음 하는 미니시리즈에서 주연으로 성큼 올라서버린 그. 이에 화답하듯, 그는 우혁과 열병 같은 사랑에 빠졌다. 앞으로의 계획도, 요즘 가장 큰 고민도 지금은 뒷전. 모든 관심은 한 사람에게만 쏠려 있다.

기억 못하실 거예요
그의 시작은 기억을 헤집어도 쉽게 찾아낼 수 없을 만큼 미약하다. 처음으로 TV에 얼굴을 내민 건 〈신세대 보고-어른들은 몰라요〉를 통해. 부모님 몰래 시작한 취미생활. TV에 나온 걸 보고 아버님이 “너 맞냐?”라고 물었을 때도 “취미생활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당연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몇 번 출연하고 군에 입대. 하지만 뭔가 끝을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래서 그 역을 제안받았을 때 “목숨걸고 하겠다, 답답하고 화나셔도 참아달라”고 감독에게 부탁했다. 연기에 대한 남다른 각오, 이제 물러설 곳이 없다.

사람이 좋아
그가 가장 욕심을 내는 건 사람. 술 마시고 사람 만나는 데 아낌없이 공을 들이는 그의 성격을 보면 인복은 만드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대신 옷에 대한 욕심, 별로 없다. 명품에 대한 복종도, 유행에 대한 추종도 단호히 거부한다. 가끔 동대문 수입상가 가서 옷 사고, 제일 편한 옷이 좋은 옷이라 생각하는 심플함. 블랙은 그의 패션에 대한 가장 좋은 해답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가볍고 컬
러풀한 의상이 부담스러워 안 입겠다고 고집도 피웠다. 지금은 물론 대세에 맡긴다. 다양한 자기 연출 또한 연기자가 되는 훈련이니까.

별 빛 같은 연기자
하루에 담배 한 갑. 술은 소주 한 병 반. 취해서 필름이 끊겨본 적 없을 만큼 강하다. 좋아하는 여자? 사랑하는 사람이 있지만 여자친구는 없다는 오묘한 대답.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했다. 그가 던져준 문제에 즐거이 상상할 뿐. 존경하는 사람, 닮고 싶은 연기자, 아직 없다. 편안한 이미지의 연기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 전부. 한참 앞서나가는 과욕도, 인기에 대한 갈증도 그에겐 그저 남의 얘기처럼 무덤덤하다. 최민용, 한순간의 불꽃보다 꺼지지 않는 별빛이 될 것 같은 사람. 낯선 그에게 알 수 없는 믿음이 간다. 서서히 빛을 내는 그에게 향하는 따뜻한 시선, 거두고 싶지 않다. 그리고 기다린다. 그의 또다른 변신.

profile
1977년 서울생. 1남 4녀 중 막내. 혈액형은 B. 즐겨부르는 노래는 정태춘의 ‘떠나가는 배’, 나훈아의 ‘내 삶은 눈물로 채워도’. 광양고를 거쳐 서일대학 휴학중. 〈신세대 보고-어른들은 몰라요〉 〈사랑의 묘약〉에 출연. 현재 KBS 미니시리즈 〈비단향꽃무〉에 출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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