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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이 덩샤오핑 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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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그래픽=박용석 기자]

방찬영
카자흐스탄 키멥대학교 총장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민생 개선을 잇따라 강조하는 것과 관련해 한국 언론들은 북한이 이미 개혁에 착수했거나 조만간 실시할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북한이 실효성 있는 개혁·개방을 정말로 시행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가늠하는 잣대가 있다. 첫째는 북한이 통치이념을 변화시킬 것이냐의 여부다. 중국의 덩샤오핑(鄧小平)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우리의 모든 개혁의 최종적 성공 여부는 정치체제의 개혁에 달려 있으며, 경제개혁이 잘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이러한 장애에 부딪치기 때문이다.” 이를 북한에 적용하면 경제개혁은 통치이념으로 신봉해 온 주체사상의 변혁을 필수로 한다. 모든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체제, 김일성 주석을 수령으로 모시고 충성을 다하며 수령의 명령에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집단주의로 요약되는 주체사상의 본질적 변화 없이는 개혁·개방이 불가능하다.

 둘째는 북한이 상호 호혜적 친선을 목적으로 하는 대외정책과 이에 상응하는 국내정책을 추진할 수 있느냐다. 덩샤오핑은 “전 세계에서 한 국가가 어떤 체제를 갖고 있든지 간에 폐쇄정책 하에서 현대화를 달성한 나라는 없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 고르바초프가 개혁과 개방을 추진하면서 언급한 것처럼 대외정책은 국내 정책의 연속이다. 평화와 우호를 목적으로 하는 국내 정책이 이루어지지 않고는 평화를 위한 우호적 대외 친선관계를 수립할 수 없다는 의미다. 적대적 대외정책으로 대변되는 북한의 대외정책은 계급투쟁, 사회주의 건설 및 전체주의에 기초한 국내 정책의 연속으로 간주된다. 북한이 주체사상이라는 통치이념을 변화시켜야 하는 필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제 개혁·개방을 단행한 사회주의 국가들 중 어느 국가는 성공하고, 어느 국가는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고르바초프를 두 번 만난 적이 있다. 필자는 그가 생산수단의 국가 소유에 대한 근본적 개혁을 단행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알게 되었다. 국영기업에 동태적 시장력(Market Forces)을 주입시키고 국가에 강력한 예산 규제를 부과하는 등 경영관리에 대해 보다 많은 권한을 부여하면 중앙집권식 통제계획도 시장경제 체제와 마찬가지로 경제현대화와 지속적 경제발전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필자는 다음날 두 사람 간의 토론 내용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 전하면서 고르바초프의 개혁·개방 시도가 실패로 끝날 뿐만 아니라 그의 실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예견은 불행하게도 적중했고, 공산주의 체제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옛 사회주의 국가들 중 카자흐스탄은 가장 성공적인 개혁·개방의 사례로 꼽힌다.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은 처음부터 개혁·개방의 궁극적 목적을 기존의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를 해체하고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데 두었다. 이를 위해 두 가지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다. 첫째는 우수한 전문요원으로 구성된 ‘전문위원회’를 구성하고 대통령 자신이 위원장을, 필자가 부위원장을 각각 맡았다. 위원회는 국가나 국영기업들이 갖고 있던 생산수단을 사유화하는 과업을 전담했다. 둘째는 외국 기업의 투자와 차관을 유치하기 위해 상호 우호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했다. 셋째는 시장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갈 인재들을 교육하고 배출하기 위해 국비 장학생 제도를 실시하고 미국식 대학교를 설립했다.

 중국의 개혁·개방 모델은 북한이 수용할 수 있는 가장 호소력을 갖춘 사례로 거론돼 왔다. 공산당 통치체제의 와해 없이 성공적으로 추진되었고, 중국을 낙후된 후진국에서 일약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하게 만들었다는 점에서다. 중국의 개혁·개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 경제활동의 10%를 자본주의 시장경제 부문으로 책정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점이다. 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기존의 중앙집권적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를 일괄 해체하고 시장경제 체제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사회적 진통과 파장을 최소화함으로써 보수주의 공산주의 당 각료들의 반발을 무마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이다. 둘째는 마오쩌둥(毛澤東) 사망 이후 덩샤오핑에 의해 주도된 마오쩌둥 사상에 대한 건설적 재평가다. 덩샤오핑이 경제개혁을 위한 정치개혁의 문을 열어놓은 것이다. 이 같은 자본주의 부문의 경제활동은 중국이 고도의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현대화를 이룩한 오늘날 중국의 초석이 되었다.

 어려운 시기에 북한을 책임지게 된 김정은 제1위원장은 과거 공산권 국가들의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카자흐스탄의 경제 개혁·개방을 주도했던 본인은 김 제1위원장이 중앙집권적 계획경제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의 동태적 요인들만을 접목함으로써 개혁·개방을 이루려 했던 고르바초프와 1960년대 다른 동유럽권 국가들의 통치자들과 같은 실패를 경험하지 않기를 바란다. 경제개혁에 성공하기 위해선 카자흐스탄이나 중국과 같이 시장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전제로 하는 시장개혁이 필요하다. 이것만이 북한 경제를 회생시키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보장할 수 있다. 인민들에게 풍족한 식생활과 부유한 경제 복지를 약속하는 것과 이를 실제로 실행하는 것은 거리가 멀다. 어떤 경제체제가 자국민들이 필요로 하는 최소한의 식생활과 경제복지를 해결해 주지 못한다면 이미 그 경제체제는 적실성을 상실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김 제1위원장이 어려운 과업을 제대로 완수해 북한의 경제발전과 현대화를 달성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방찬영 카자흐스탄 키멥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