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엑소시스트:디렉터컷(197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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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시스트'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1973년 개봉 당시 1억6천만 달러의 흥행수입을 올렸으며 공포영화의 교과서라고 불린다. 이 영화가 개봉했을 무렵 영화에 관한 거센 찬반논쟁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영화를 보는 관객이 상영 도중 졸도하는 헤프닝이 생기기도 했다. '엑소시스트'의 감독판 버전, 즉 디렉터스 컷은 원작의 공포를 뛰어넘은 무엇인가를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엑소시스트'를 TV 화면으로 본 사람이라면 극장에서 영화를 본 뒤 새로운 느낌을 갖게 될 것 같다. 특히나 새롭게 믹싱된 오싹한 음향효과는 영화 내내 관객을 긴장하게끔 한다. '엑소시스트'의 디렉터스 컷은 원작보다 약 11분 늘어난 길이이며 미국에선 최근 개봉해 박스오피스 정상에 등극하기도 했다.

이라크 북부에서 노신부 메린은 고분을 발굴하다 이상한 조각을 발견한다. 한편, 미국 조지타운에서 살고있는 리건에게 이상한 증세가 생긴다. 병원에선 여러 검사를 행하지만 뽀족한 원인을 해명하지 못한다. 유명배우인 리건의 모친은 결국 아이의 병이 심령적인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결론내린다. 카톨릭 사제인 카라스 신부는 악령을 쫒기 위한 엑소시즘을 제의받고 노신부 메린에게 도움을 청한다. 악령에 맞서는 메린과 카라스 신부에겐 기도와 성수, 그리고 십자가가 유일한 무기다.

'엑소시스트'를 만든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은 1970년대 할리우드에서 주목받는 흥행감독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원래 TV 다큐멘터리 연출자로 활동하다가 영화로 무대를 옮겼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대표작이라면 아무래도 '프렌치 커넥션'을 들 수 있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형사물 '프렌치 커넥션'으로 그는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장르영화를 잘 만드는 감독으로 평가받았다. 감독의 또다른 흥행작이 바로 '엑소시스트'다. '엑소시스트'의 특징이라면 영화가 시작된지 한참이 지나도록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일 것이다. 아주 평화롭게 보이는 한 가정이 있고 여기서 자라는 아이가 하나 있다. 아이는 어느날부터인가 조금씩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데 주위 사람들은 처음엔 무관심한 태도를 보인다. 그러다가 점차 아이는 광적인 행동이 도를 더해가고 얼굴마저 추하게 변해가며 신성모독적인 말을 서슴지 않게 된다. 악령이 들린 것이다.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은 이렇듯 영화에서 겹겹이 서스펜스를 쌓아가고 미스테리의 본질을 감춰두었다가 영화 중반 무렵부터 조금씩 터뜨리는 방식으로 관객을 놀라게 한다. 영화가 개봉할 당시 프리드킨 감독이 히치콕 감독의 적자라는 평을 들었던 것도 무리가 아니다. 디렉터스 컷에선 원작영화에서 삭제되었던 부분인 스파이더 워크, 다시 말해서 악령들린 소녀인 리건이 몸을 거꾸로 한채 계단을 기어내려오는 장면이나 십자가로 자위를 하는 장면들이 고스란히 살아있다. 감독 스스로는 이 장면들이 추가된 것을 흡족하게 여기면서 영화의 "영적인 깊이와 공포의 무게가 더해졌다"라고 자평한다고 전해진다. 추가된 장면이 늘어난 탓인지 영화에서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막스 폰 시도우의 명연기도 빛을 발한다. 종교적인 번민과 악에 대한 증오로 고통받으면서 엑소시즘을 단호하게 행하는 그의 모습은 영화의 백미라고 할만하다.

'엑소시스트'는 개봉 당시 영화의 숨겨진 의미에 대해 여러 갈래의 평가를 얻은 바 있다. 좋은 예가 평론가 로빈 우드가 영화를 "미국적 가족영화"로 정의한 것이다. 이는 영화를 미국 사회의 내적 모순과 연결시키면서 고루한 기성세대, 그리고 이를 공격한 청춘세대의 갈등으로 읽은 대목이다. 이같은 평은 지금에 와서 상기해도 적절한 구석이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하나같이 나사가 빠진 모습이거나 믿음이 없고, 어딘가 불안해보인다. 악령에 사로잡혀있는 리건은 기세등등하게 기성세대를 비웃고 그들 앞에서 신을 모독하고 저주받은 언어를 내뱉는다. 영화는 얼핏 선의 승리같지만, 궁극적으로는 기묘한 패배주의로 막을 내린다. 싸움은 끝났지만 선이 악을 이긴 것은 아니다. 그저 단순하게 잠시 휴지기를 가질 따름이다. '엑소시스트'는 이처럼 아이러니한 패배주의를 강조하면서 미국 사회의 기존 질서에 대해 묘한 냉소를 던지고 있다. 시카고 선타임즈의 "찬란히 빛나는 호러영화의 걸작"이라는 평가는 '엑소시스트'가 마땅히 받을만한 영예로운 찬사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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