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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학교폭력 기록 반대하는 친전교조 교육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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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한길
사회부문 기자

23일 오전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긴급기자회견을 했다. 전날 교육과학기술부와 대학교육협의회가 “예정대로 올 입시에 학교폭력 가해기록을 반영하겠다”고 밝힌 데 반발해서다. 그는 “(학교폭력 가해사실의 학생부 기재는) 해당 학생의 대입 당락에 결정적 영향을 미쳐 너무도 억울한 일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학교폭력 가해사실 기재는 폭력적 대책”이라고도 했다.

 1학기부터 시행된 학교폭력 가해사실 기재 제도가 반년도 안 돼 엉켜버렸다. 혼란은 이달 초 김상곤(경기)·김승환(전북)·민병희(강원) 등 친(親)전교조 교육감 3명이 “인권침해”라며 기재 보류 방침을 밝히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지난 3일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를 반대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인권위는 당시 “학생부에 장기간(5~10년) 가해사실 기록을 남기는 것은 과도한 조치다. (가해 학생이) 잘못을 뉘우치면 중간에 기록을 삭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를 놓고 친전교조 교육감들은 “인권위도 사실상 반대한다”며 제도 폐지를 요구했다.

 하지만 정작 인권위는 교육감들이 잘못 이해했다는 입장이다. 박성남 인권위 교육기획팀장은 “제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한 게 아니라 단계적인 개선을 권고한 것으로 결정문에도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는 표현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선의의 권고사항이 정치쟁점화해 당황스럽다”고도 했다. 친전교조 교육감들이 인권위 권고를 아전인수(我田引水)식으로 해석한 것이다.

 친전교조 교육감들은 그간 학생인권조례 등을 추진하며 학생 인권을 강조해 왔다. 그런데 유독 학교폭력 문제나 피해학생 인권보호에는 소극적이다.

한두 번 잘못한 학생을 범죄자로 몰아붙여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물론 옳은 말이다. 하지만 폭력 가해사실을 덮어주기 시작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일반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학교폭력은 성인범죄와는 다르다. 성장기 학생들은 사소한 폭력에도 큰 상처를 받는다. 중학생 때 당한 괴롭힘 때문에 다섯 번이나 자살을 시도했던 ‘웃음치료사’ 진진연(41, 본지 2011년 12월 30일자 1면)씨의 이야기는 폭력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대구 중학생 권모군 자살사건이 벌어진 지 9개월이 지났다. ‘학교폭력=범죄’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이념 싸움으로 날려버린다면 제2, 제3의 권군이 생길 수도 있다.

이한길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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