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성범죄 흉포화, ‘묻지마’ 대책만으론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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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성범죄자가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 잇따르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그간 아동 성폭행 등이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쏟아져 나왔던 대책들의 효과가 의문시되고 있다. 단호하고도 냉정한 자세로 기존 정책을 보완하고 보다 섬세한 대책을 강구할 때다.

 지난 20일 서울 광진구의 주택가에서 전과 12범의 40대 남성이 성폭행에 저항하는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 다음 날 수원에서는 성폭행이 실패하자 달아나면서 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명을 숨지게 하고 4명을 다치게 한 30대 남성이 검거됐다. 전과 11범인 그는 특수강간 혐의로 7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출소한 지 43일 만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두 범인의 공통점은 성범죄 전과자란 점이다. 특히 서울 살인범은 전자발찌를 찬 채로 범행을 했다는 점이 충격을 주고 있다. 전자발찌 착용자가 발찌를 훼손하거나 접근금지 구역에 갔을 때만 경찰에 신고되는 현행 운용체계의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수원 살인범의 경우 검찰에서 전자발찌 부착을 청구했으나 ‘소급입법’ 시비에 따른 위헌심판제청으로 법원 결정이 보류된 상태였다. 헌법재판소가 조속히 결정을 내림으로써 논란을 정리했어야 할 문제다.

 근본적으로는 ‘묻지마’식의 범용(汎用) 대책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성범죄 법정형을 대폭 상향 조정하는 등 엄벌 중심의 대책이 마련돼왔다. 이제는 재범 우려가 있는 성범죄 전과자를 밀착 관리하고 교정 교육을 강화하는 등 ‘맞춤형’ 대응 프로그램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현재 성폭행·살인 등으로 1026명이 전자발찌를 부착하고 있지만 이들을 감독하는 전담 인원은 100명 남짓에 불과하다. 발찌 착용자 관리 인력과 예산을 확충하고 착용자 정보를 경찰과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또 재범을 예방하기 위해선 개별 범죄자에 대한 집중 상담과 심리치료를 통해 교정의 효과를 높여야 한다. 이런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고는 분노의 목소리 속에 희생자가 계속 나오는 ‘성범죄 흉포화의 함정’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