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투병 소년이 쓴 뜨거운 생명의 시

중앙일보

입력

"지금까지/난 누구와도 싸워 본 일이 없어요/싸울 일이 없었거든요/앞으로/난 암 악마와 싸울 거예요/싸워서 내 몸의 건강도 찾고/싸워서 내 살아갈 권리도 찾을 거예요/왜냐하면 난 아직 아홉살이니까요/왜냐하면 난 아흔아홉살까지 살 거니까요. " ( '아홉 살 생일' 전문)

오른쪽 다리에 생긴 암세포 때문에 두 번의 수술을 받고 병원에서 맞이한 생일날, 소년은 이렇게 시를 지었다. 하지만 소년은 만 열살을 채우지 못했다. 42편의 가슴 절절한 '생명의 노래' 들만 남긴 채 아빠.엄마, 그리고 동생의 곁을 영영 떠나버렸다.

〈내게는 아직 한쪽 다리가 있다〉는 바로 암과 싸우다 1997년 5월 18일 숨진 대만의 소년 주대관(周大觀.사진) 의 짧은 생애를 담은 책이다. 삶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잃지 않았던 소년의 모습은 큰 병이나 장애로 고통받고 있는 어린이들과 그 부모들 뿐 아니라 건강한 어린이들에게도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대관이 투병 생활 틈틈이 써내려간, 아이의 '혼이 담긴' 시들은 어린이다운 표현 속에 살고 싶다는 의지가 가득해 읽는 이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

"우리는 암을 물리치는 합창단!/의사 선생님이 지휘/간호사 누나가 반주/엄마, 아빠, 동생과 나는/생명의 자장가를 합창해요/호주의 코알라도 잠들고/중국의 팬더도 잠들고/대만의 원숭이도 잠들었어요/암 악마도 이제 잠들 거예요. " ( '합창단' 전문)

유치원 때부터 당시(唐詩) 들을 암송했을 만큼 똑똑했고 바이올린 켜기를 좋아했던 대관에게 어느 날 암이라는 '악마' 가 찾아온다. 수술과 화학.방사선 요법을 시도하고 한쪽 다리까지 잘라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세상에 아부하지 않고 당당하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 이 되길 바랐던 아빠.엄마의 가르침 때문이었을까. 대관은 부모보다 더 꿋꿋하게 자신의 운명을 대했고, 죽음 선고를 직접 듣고 나서도 의사와 간호사에게 "지금까지 절 돌봐 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말해 어른들을 숙연하게 했다.

"내가 온 힘을 다해 암과 싸웠다는 것을 암에 걸린 다른 아이들과 그 부모들에게 전해 주고, 그들에게 용기와 강한 의지를 갖고 암이라는 악마와 맞서 싸워달라고 전해 주세요. " 소년의 유언대로 부모는 소아암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을 돕는 '주대관 문교기금회' 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오는 6월 동국대.불교방송국 등의 협조를 받아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