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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권석천의 시시각각

그들은 왜 에미넴에 열광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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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권석천
논설위원

그날 나는 상위 1%였다. 그런데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지난 일요일 오후 5시 잠실보조경기장 앞에서 예약번호에 맞춰 줄을 서 있을 때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이 20대다. 30대나 10대도 간혹 눈에 띄었지만 나처럼 40대 중반을 넘긴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호기심이 고양이를 죽인다고 했던가. 이날 다섯 시간 동안의 고행은 “에미넴(Eminem) 아시죠?”란 질문을 받은 데서 비롯됐다. 호기심 반(半), 자격지심 반. 공연 전날 인터넷 검색을 했다. 세계적인 뮤지션, 미국 힙합계의 악동, 살아있는 전설…. 몇 곡을 들었지만 와닿지 않았다. 그런 콘서트에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나 자신을 다독였다.

 오후 6시15분쯤 에미넴 공연이 열리는 보조경기장 안으로 줄지어 입장했다. 울타리가 쳐진 ‘스탠딩 구역’으로 양떼처럼 들어간 관객들은 무대 가까운 쪽으로 뛰어갔다. 나도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생존을 건 자리다툼이 계속되고 있을 때 가랑비가 내렸다. 뒤에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가방, 내 몸보다 소중한데… 오빠 가방에 넣을 수 있어?” “네 몸보다 소중한 게 어디 가방뿐이겠냐.” 오프닝 공연이 열리자 관객들은 팔을 높이 치켜들고 앞쪽으로 흔들기 시작했다.

 에미넴은 오프닝 공연 후 30분이 다 되도록 나오지 않았다. 대형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관객들은 함께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른바 ‘떼창’이었다. “올 상반기 클럽을 강타한 그 노래잖아. 이 정도면 국민가요네, 국민가요.” 나는 국민이 아닌 걸까, 자괴감에 빠져들 무렵 에미넴이 모습을 드러냈다.

 티셔츠와 반바지에 모자를 쓴 에미넴은 속사포처럼 랩을 내뱉었다. 몸을 굽혔다 펴며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창법이었다. 관객들은 떼창을 하며 물결쳤다. 몇 곡이나 흘렀을까. 밀착한 몸들이 뿜어내는 찜통 열기 속에 팔, 다리가 쑤시고 저려왔다. 아래로 내리치는 무수한 팔들을 밀어내고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뒤쪽 빈 공간에선 삼삼오오 스크린을 향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였다. 무대 위의 에미넴이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에 흥이 오른 듯 “나를 따라 하라”며 외쳤다. “원, 투, 스리, 퍽(Fuck)!” “쉿(Shit)!” ‘씨X’이나 ‘제기랄’에 해당하는 비속어들이었지만 관객들은 일제히 목청을 높였다. “퍽!” “쉿!” 소리가 잠실 밤하늘에 울려퍼졌다. 에미넴이 두 팔로 하트를 그리자 환호성은 더욱 커졌다.

 참 뭐라고 표현하기 난감한 경험이었다. 2만여 관객이 왜 미국 가수의 욕설 한마디, 몸짓 하나에 열광하는지 궁금했다. 에미넴은 미국 루저(loser·실패자) 문화의 아이콘이다. 디트로이트의 빈민가에서 성장한 그는 스스로를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백인 쓰레기)’라고 부른다. 그의 랩엔 가족에 대한 애증과 약물중독에 빠졌던 개인사가 날것으로 담겨 있다. 에미넴은 말한다. “내 음악은 개똥 같은 날들을 산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음악은 왕따당하는 열다섯 살 아이도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엿이나 먹어! 너희들은 내가 어떤 앤지 알지 못해!’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을 준다.”(『에미넴의 고백』)

 이런 에미넴에 젊은 세대들이 격하게 반응한 건 무엇 때문일까. 그냥 빠른 리듬을 즐기는 것일까. 아니면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루저도 세상을 향해 외칠 수 있다’는 메시지에 감응했기 때문일까. 더 열심히 공부하고, 경쟁하고, 노력하는데도 요지부동인 현실에 대고 외치고 싶은 건 아닐까. ‘퍽’이든, ‘쉿’이든, 비명이든, 절규든.

 이건 나만의 개인적인 감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20대의 96%가 계층 상승의 꿈을 접었다는 조사 결과(현대경제연구원)는 그들 속에 좌절과 갈망이 소용돌이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미넴, 멋지지 않냐.” “어, 졸라 시원해.” “내일 알바 뛰어야 하는데….” 공연이 끝난 뒤 젊은 그들은 어느새 굵어진 빗줄기를 뚫고 잠실운동장을 빠져나갔다. 다시 어두운 도시의 밤이 입을 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