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LB] 시간 탐험 (30) - 홈런 베이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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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를 풍미했던 강타자 프랭크 베이커는 '홈런 베이커'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도대체 그는 얼마나 많은 홈런을 쳤길래 베이브 루스도 가지지 못한 이런 '영광스런' 애칭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가 활약한 시기가 데드볼시대였음을 감안하면 96개의 통산홈런수는 돋보이는 수치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홈런의 대명사라 칭할만큼의 숫자는 결코 아니다. 풀타임 12시즌 중 베이커가 홈런왕에 오른 것도 고작(?) 세번에 불과했다.

그러나 베이커가 '홈런(Home Run)'이란 애칭을 얻는 데는 홈런 2개면 충분했다.

1911년의 월드시리즈는 베이커나 그의 소속팀인 필라델피아 어슬레틱스(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에게는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이었다. 1905년 어슬레틱스가 월드시리즈에 처음 진출했을 때 패배의 아픔을 안겨준 뉴욕 자이언츠와의 맞대결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이언츠의 에이스 크리스티 매튜슨에 대한 복수전이기도 했다. 1905년 월드시리즈에서 매튜슨은 어슬레틱스의 타선을 상대로 전무후무한 세번의 완봉승을 따냈다.

어슬레틱스는 1차전의 선발로 치프 벤더를 내세웠지만, 매튜슨은 1실점 완투승으로 팀의 1-2 승리를 이끌었다.

투수전은 2차전에도 이어졌다. 양팀이 1-1로 팽팽히 맞서 있던 6회말, 베이커는 이듬해 단일시즌 최다연승 기록(19연승)을 세우게 될 루브 마커드에게 결승 2점홈런을 뽑아냈다. 어슬레틱스의 3-1 승리.

자이언츠의 존 맥그로우 감독은 경기에 앞서 마커드에게 "베이커에게는 높은 직구를 절대로 던지지 마라"며 신신당부했지만, 마커드는 그 충고를 잊었다.

3차전은 시리즈의 향방을 결정지은 중요한 경기였다. 매튜슨을 내세워 9회초 1사까지 1-0으로 앞섰던 자이언츠는 승리를 향한 마지막 한 고비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베이커를 맞아 매튜슨은 철저하게 바깥쪽 낮은 공으로 승부했다. 그러나 볼카운트 1-3에 몰린 매튜슨은 커브가 가운데로 몰리며 베이커에게 통한의 동점홈런을 허용했다. 훗날 매튜슨은 볼카운트 1-1에서 던진 회심의 커브가 볼로 판정받은 것이 결정적이었다고 회고했다.

3차전은 연장 11회의 혈전 끝에 어슬레틱스의 3-2 승리로 끝났다. 어슬레틱스는 폭우로 6일이나 연기된 4차전에서 매튜슨을 10안타로 두들겼고, 결국 시리즈 전적 4승2패로 1905년의 패배를 앙갚음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프랭크 베이커는 홈런 베이커로 불리기 시작했다.

때로 팬들은 전체보다는 일부분을 더 잘 기억한다. 이들은 월드시리즈 유일의 퍼펙트게임 달성자인 돈 라센의 통산성적(81승 91패)을 보고 깜짝 놀라며, 잭 체스브로의 끝내기 폭투를 위해 41승의 쾌거를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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