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新차이나타운 가보니 700m거리에 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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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진구 자양동 건대입구역 인근에 있는 ‘양꼬치 거리’에는 한자로 가득한 붉은색 간판을 내건 중국 음식점들이 빼꼭히 들어서 있다. [김성룡 기자]

지난해 중국 항저우를 떠나 서울대로 유학 온 중국인 리리(李麗·23)는 서울 광진구 자양동의 건대입구역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그녀가 서울대에서 지하철로 40여 분이나 떨어져 있는 이곳을 고집하는 이유는 음식 때문이다. 리리는 “유학 올 때 음식이 입에 맞을까 걱정이었다”며 “건대입구역 주변은 중국 현지처럼 다양한 식재료를 구하기 쉽고 음식도 맛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구로동이나 대림동과 달리 교통이 편하고 동네가 깨끗해서 좋다”고 덧붙였다.

 17일 오후 건대입구역 5번 출구 인근. 젊은이들로 북적이는 패션·잡화 매장이 늘어선 ‘로데오 거리’를 지나자 한글과 한자가 뒤섞인 중국식 붉은색 간판을 단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선 거리가 나타났다.

 일명 ‘양꼬치 거리’다. 700m에 달하는 거리엔 양꼬치집들이 즐비했고 샤브샤브(火鍋)나 마라탕(麻辣湯)을 파는 식당이 여럿 눈에 띄었다. 가게 안에서 들려오는 높낮이 강한 중국말을 듣고 있자면 영락없이 중국의 어느 거리에 와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서울 중심에 생긴 신(新)차이나타운인 셈이다.

 이 거리는 10여 년 전 인근 화양동·성수동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중국동포(조선족)들이 이곳에 식당을 차리면서 형성되기 시작했다. 지금은 중국에서 식당을 운영했을 정도로 실력 있는 조선족들이 주방장인 식당도 많다.

 현재 광진구에는 중국인과 조선족 등을 포함해 1만4000여 명(8월 기준)이 거주하고 있다. 인근 건국대의 외국인 유학생 2300명 중 80% 이상이 중국 출신으로 대부분 이 부근에 살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 자오커진(趙可金·45)은 “지난번에는 명동에만 가 봤는데 이곳에 중국인도 많이 살고 음식점도 많다고 해서 왔다”고 말했다. .

 이곳은 국내 원조 글로벌촌이라 할 수 있는 인천의 차이나타운과는 다른 점이 많다. 인천 차이나타운은 1883년 인천항 개항 이후 화교들이 가지각색의 중국음식을 팔면서 형성됐다. 100년 넘는 전통을 가진 음식점도 여럿 있다.

 반면에 신차이나타운은 ‘양꼬치’로 특화된 거리다. 중국 현지의 조리방식과 동일한 양꼬치뿐 아니라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게 고춧가루와 깨소금을 사용한 ‘퓨전’ 스타일을 내놓기도 한다. 꼬치, 면 등 다양한 재료를 매운 육수에 넣어 끓이는 마라탕도 이곳의 별미다. 리리는 “중국에서 먹던 맛 그대로라 일주일에 두세 번은 먹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꼬치 가게가 경쟁적으로 들어서면서 한국인들이 운영하던 식당은 설 자리를 잃었다. 공인중개사 김순녀(46)씨는 “하루에도 서너 명씩 음식점 자리를 문의하는 중국인이나 조선족들이 찾아온다”며 “한국 식당은 채 10곳도 안 남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국인들과 내국인 간 갈등도 우려되고 있다. 정북현(65) 한국다문화가족지원연대 사무총장은 “중국 식당이 늘어나면서 침체에 빠졌던 지역경제가 살아나는 장점도 있다”며 “인천 차이나타운처럼 잘 관리하면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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