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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뜨는 사모펀드 … 유럽의 알짜자산 쇼핑 나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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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유럽 재정위기로 헐값에 나오는 자산이 글로벌 사모펀드의 사냥감으로 떠오르면서 사모펀드에 뭉칫돈이 속속 몰리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의 금융 중심지인 파라데플라츠에 번개가 치고 있다. [취리히 로이터=뉴시스]

사모펀드(Private Equity)는 부호나 기관 투자가들이 돈을 맡기는 곳이다. 뮤추얼펀드처럼 대중의 돈을 받지 않아 돈을 굴리는 데 한결 자유롭다. 기업 인수합병(M&A), 자원 개발, 부실채권 인수 등에 쉽게 뛰어드는 까닭이다.

 일부 사모펀드가 기업을 공개(IPO)하고 주식을 상장했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비밀의 화원이다. 투자 주체와 투자 대상 등이 모두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 바람에 이런저런 음모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사모펀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투자장치다. 미국 예일대 윌리엄 코츠먼(금융경제) 교수는 “로마 부호들이 돈을 모아 거대 건축물 건설에 투자한 게 바로 사모펀드의 기원”이라고 설명했다. 사모펀드는 서구 역사의 분수령을 만들기도 했다. 15세기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스페인 국왕 페르디난드와 이사벨라가 귀족들과 함께 조성한 사모펀드가 아니었다면 신대륙 탐험에 나서지 못했다.

 이런 사모펀드의 전체 자산이 지난해 말 기준 다시 3조 달러(약 3400조원)에 이르렀다. 2009년 3조1126억 달러였으나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2010년 3700억 달러 정도가 빠져나갔다. 그때 “월가 한쪽에선 사모펀드 시대가 끝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보도했다.

 하지만 사모펀드 업계는 빠져나간 돈 중 거의 대부분을 2011년에 다시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글로벌 더블딥(경기 회복 후 재침체)과 유로존(유로화 사용권) 붕괴 우려가 시장을 짓누르고 있는 와중에 말이다.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그 궁금증을 안고 미국 투자컨설팅 회사인 타워스왓슨의 사모펀드 투자자문 글로벌 대표인 마크 캘넌(사진)을 최근 만났다. 그는 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의 사모펀드 투자 자문을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었다.

●왜 돈이 사모펀드로 다시 몰리고 있다고 보나.

 “사모펀드는 위기 속에서 성장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위기의 연속이다. 정말 능력이 있는 사모펀드 매니저라면 이런 상황에서 고수익을 낼 수 있는 곳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진짜 실력을 보여줄 기회다. 투자자들이 이런 점을 알고 돈을 맡기고 있다.”

●어떤 기회가 있다는 것인가.

 “미국·유럽 은행들이 대대적으로 자산을 줄여야 한다. 이미 발표된 것만도 2조 달러(약 2260조원)에 이른다. 시간이 갈수록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재정위기와 경기침체가 가장 큰 원인이다. 강화된 금융규제가 금지하는 자산들도 처분해야 한다.”

●미국·유럽 자산 처분이 왜 좋은 기회인가.

 “자산 바겐세일이다. 이들 자산은 상장된 주식과는 달리 유동성이 떨어진다. 즉시 현금화가 어렵다. 사모펀드는 다양한 전략을 가지고 이런 자산을 사들여 (분류 과정을 거쳐) 처분해 고수익을 챙길 수 있다.”

 발 빠른 사모펀드들은 이미 행동에 나섰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미국 거대 사모펀드인 블랙스톤과 KKR 등이 유럽지역에 투자 거점을 마련했거나 확충했다. 유럽 재정위기 때문에 발생한 부실자산을 헐값에 사들이기 위해서다. 이는 2007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초기에 사모펀드들이 미국에 집결한 것과 같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모기지 회사나 은행들이 연체된 주택담보채권을 싼값에 팔아 넘기기 시작했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직후 한국 시중은행들도 부실자산 바겐세일을 한 적이 있다. 뉴브리지캐피털·론스타 등이 그 자산들을 싼값에 사들여 엄청난 수익을 챙겼다.

 이런 역사적 경험 탓인가. “유럽 부실자산 투자에 대한 열기가 광기(Mania)와 닮았다”고 하버드대의 기금운용 책임자인 제인 멘딜로가 최근 평했다. 하버드대와 예일대 기금은 90년대 이후 일정 자산을 사모펀드에 맡겨 운용해 재미를 봤다.

●한국 개인 투자자들도 사모펀드를 통해 유럽 부실채권에 투자할 수 있을까.

 “미국·유럽 사모펀드 최저 투자 한도가 500만~1000만 달러(약 56억5000만~113억원)이다. 현실적으로 개인 투자자가 사모펀드에 돈을 맡기기는 쉽지 않다. 몇몇 사모펀드가 대중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는 하다.”

 실제 미국 사모펀드인 칼라일 등이 최근 개인 투자자들을 위해 일부 펀드의 최저 투자한도를 낮췄다. 일부는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뮤추얼펀드를 설정해 개인 투자자들에게 사모펀드 투자전략을 간접적으로 맛볼 수 있도록 했다.

 부실자산 값이 싼 것은 은행 등 파는 쪽의 다급함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 유럽 은행들은 지난해 이후 마음이 급했다. 부실자산을 하루 빨리 처분하고 구멍 난 자본금을 서둘러 메워야 했다. 그러지 않으면 시장의 불신에 휘말려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유럽 은행들이 다소 느긋해졌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스페인·이탈리아 등의 국채를 사들이는 방안을 추진하고 나서다. 시중은행들이 ECB가 남유럽 부실 국채를 사줄까 기다리며 바겐세일을 미루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럽 부실채권 투자의 기회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재정위기와 긴축 때문에 유로존의 많은 회원국 경제가 더블딥에 빠졌다.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기업이 늘어나 은행들의 자산이 빠르게 부실화하고 있다. 블룸버그는 사모펀드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부실자산 시장이 아직 만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는 얘기다.

●또 다른 기회는 없을까.

 “차입매수(LBO) 시장에서도 좋은 기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차입매수는 말 그대로 돈을 빌려 기업을 사들이는 것이다. 3~4년 전에 붐이었다. 차입매수 세력들이 이제 빌려 쓴 돈을 갚을 때가 됐다.”

●만기가 다가오는 게 왜 좋은 기회일까.

 “차입매수 세력이 빌려 쓴 돈을 갚기 위해선 2000억 달러가 필요하다. 일부 차입매수꾼은 돈을 갚지 못해 인수한 회사를 팔아야 할 수도 있다. 사모펀드가 싼값에 좋은 회사를 사들일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것이다.”

●사모펀드는 에너지 등에도 투자하는가.

 “광산회사를 사들이는 일 등은 사모펀드의 몫이 아니다. 일반 주식시장에서 광산주를 매입하는 게 더 좋다. 하지만 석유 등 에너지 개발 등에 투자하는 일은 사모펀드가 어떤 펀드보다 잘한다. 또 신재생에너지 분야도 사모펀드가 좋아하는 분야다.”

●국민연금 등 한국 기관 투자가들은 사모펀드 투자에 얼마나 관심이 큰가.

 “한국 연기금들은 2~3년 전까지만 해도 사모펀드에 별 관심이 없었다. 중국에 관심이 쏠려 있었다. 그런데 최근 1년 사이 우리가 무척 바빠졌다. 사모펀드에 대한 투자 자문을 원하는 연기금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지난해 유럽 위기가 도화선이 됐다. 지난해 8월 이후 글로벌 주식시장이 아주 불안해졌다. 연기금은 해마다 일정 금액을 수익자들에게 지급해야 한다. 이 때문에 일정 수익을 내는 게 필수다. 하지만 주식과 채권 시장이 시원찮다. 그래서 사모펀드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사모펀드라고 해서 도깨비방망이는 아니다. 단기적으로 손해를 감수하고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을 사들여 장기적으로 고수익을 노린다. 자칫 헛발질을 해 큰 손실을 볼 수도 있다. 그만큼 사모펀드를 잘 고르는 선구안이 요구된다.

●2000년 이후 사모펀드가 급증한 것 같다.

 “미 주택 거품이 붕괴하기 전까지 경제 상황이 아주 좋았다. 주가는 상승 중이었고 금리는 아주 낮았다. 수많은 사모펀드들이 등장했다. 그땐 주식시장 평균보다 15%포인트 정도 더 높은 수익이 어렵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그렇지 않다.”

●현재 어느 정도 수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사모펀드 역사에 비춰 주식시장 평균보다 3~5%포인트 높은 수익을 기대하는 게 적절해 보인다.”

 미국 증시의 장기 연평균 수익은 7~8% 정도였다. 사모펀드는 10~13% 정도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마크 캘넌=영국 출신이다. 리즈대에서 경영학과 경제학을 공부했다. 타워스왓슨에서 2004년 투자 컨설턴트로 일하기 시작했다. 5년 뒤인 2009년부터 타워스왓슨의 사모펀드 투자자문 분야를 총괄하고 있다. 타워스왓슨은 19세기 영국 회계법인에 뿌리를 둔 미국 뉴욕에 있는 컨설팅 회사다. 경영 전략 등 일반 비즈니스 조언을 하기도 하지만 투자자문과 리스크 관리에 대한 컨설팅을 잘하기로 정평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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