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장갑 퍼포먼스, 메달은 지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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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육상 남자 200m 결승에서 1, 3위로 골인한 미국의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가운데)와 존 카를로스(오른쪽)가 시상식에서 흑인 인권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남자 육상 200m 시상식. 금메달과 동메달을 딴 미국의 흑인 선수 토미 스미스(당시 24세)와 존 카를로스(당시 23세)는 목에 검은 스카프를 두르고 신발 없이 검은 양말만 신은 채 시상대에 올랐다. 우승자를 위해 미국 국가가 흘러나오자 두 선수는 검은 장갑을 낀 손을 높이 올렸다. 미국 내 인종차별에 반대하며 흑인 인권 문제를 정면으로 이슈화한 순간이었다.

 ‘블랙 파워 살루트’ 사건으로 불린 이 퍼포먼스는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는 폭력적 행위’라고 간주해 두 선수를 선수촌에서 쫓아낸 뒤 메달을 박탈했다고 알려져 왔다. 최근 한국 올림픽 축구 대표팀의 박종우(23)가 ‘독도 세리머니’를 펼쳐 동메달 박탈 위기에 빠진 상황과 비교되며 국내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이들의 메달은 박탈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메달을 박탈해야 한다는 일부 강경 의견이 있었지만 박탈은 안 하고 선수촌에서 추방했다”는 당시 LA타임스의 기사가 있다. 당시 IOC 위원장이었던 에이버리 브런디지(미국)가 “일부 몰지각한 니그로들의 추태”라고 격렬히 비난할 만큼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상황 속에서 살아남은 메달이기도 했다.

 두 선수는 백인들의 암살 협박에 시달리며 장기간 은둔 생활을 이어왔다. 하지만 지금 이들은 ‘인권운동의 영웅’으로 평화로운 말년을 보내고 있다. 캘리포니아주립대 새너제이 캠퍼스(SJSU)에는 두 사람이 주먹을 들고 있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2001년과 2010년엔 토미 스미스가 자신의 금메달을 경매에 내놓기도 했다. 2001년 50만 달러, 2010년엔 25만 달러로 시작한 경매는 두 차례 모두 유찰됐다.

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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