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영화 Buddy] 감독 류승완·배우 류승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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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들은 자신들이 길을 잘못 들었다면 이산가족을 찾아주는 TV프로그램인 KBS '아침마당' 에 출연했을지도 모른다고 농담했다.

10여년 전,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사별해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겨웠던 청소년기에 훌쩍 집을 떠나고 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일었다고 한다. 그러나 형에겐 영화가 있었고, 동생에겐 춤과 음악이 있었다.

형은 말 그대로 건실한 청년이었다. 할머니.동생을 부양하는 젊은 가장으로서 공사장 인부.고구마 장사 등 30여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영화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1년에 6개월은 생업에 전념하고, 나머지 6개월은 영화제작현장을 따라다녔다. 짬짬이 시간을 내 탐닉했던 비디오가 2천여편. 훌륭한 액션배우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지금은 앞날이 기대되는 감독으로 성장했다.

동생은 다소 불량기가 있었다. 본드를 흡입하거나 '오토바이 질주족' 이 되지는 않았지만 뭔가 자신을 구속하는 게 싫어 고교를 중퇴하고 가출도 한번 했다. 대신 서태지보다 춤을 잘 추려고 심야 지하철역에서 힙합춤을 연습했고, 음악이 좋아 나이트클럽 DJ로 일했다.

그런데 지금은 스타급 배우에 합류할 태세다. 올 대종상에선 신인 남우상도 수상했다.

MBC '성공시대' 의 예고편 같다. 온갖 험난한 조건을 이겨내며 인간승리를 이뤄낸 휴먼스토리…. 하지만 그들에겐 지금이 진정한 출발이다. 감독으로, 배우로 가능성은 충분히 비쳤지만 이제 '제2의 도약' 을 향한 발판에 올라섰기 때문이다.

류승완(28) 감독과 배우 류승범(21) . 지난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16㎜ 영화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와 인터넷 영화 '다찌마와 리' 에서 손발을 맞췄다. 그리고 다음달 촬영에 들어갈 '피도 눈물도 없이' 에서도 함께 작업한다. 형은 감독, 동생은 배우, 보기 드문 관계다.

"사실 '죽거나… ' 는 동생을 생각하고 대본을 썼어요. 폭력세계에서 소멸해가는 인물들을 통해 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은유했지요. 그런데 동생은 연기할 필요가 없었어요. 자기 얘기처럼 놀더라구요. " (승완)

"지금도 어안이 벙벙해요. 배우를 꿈꾼 적이 한번도 없었거든요. 그런데 대종상까지 타다니… . 이젠 욕심이 생겼어요. 연기에 대한 책임감이 붙은 것이죠. " (승범)

류씨 형제는 올 전주영화제의 하이라이트였다. 개막작 '와이키키 브라더스 '(임순례 감독) 에 출연한 동생이 영화제 홍보 도우미로 뛰었고, '다찌마와 리' 는 60년대 한국 액션영화를 돌아보는 특별전의 물꼬를 텄다. '죽거나…' 도 지난해 전주영화제부터 인기몰이를 시작했다.

그들은 '와이키키…' 에 빗대 자신들을 '전주 브라더스' 로 불렀다. 예전 작품처럼 함께 작업한 것은 아니지만 전주와 맺은 각별한 인연 덕분이다. 동생은 '와이키키… ' 에서 밴드 지망생의 n세대 웨이터로 나온다.

"저로부터 '독립한' 영화지요. 저도 운이 좋은데 동생은 더한 것 같아요. 훌륭한 감독 밑에서 배웠으니 말입니다. 걱정이 많았는데 연기력이 늘었어요. " (승완)

"형과 일할 땐 말이 필요없어요. 눈짓만으로도 서로 원하는 것을 알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대화의 중요성을 깨닫게 됐습니다. 물론 미흡한 점은 많았지만요. " (승범)

형제라는 절친한 관계가 영화라는 공적인 작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지 궁금했다. 형의 답변이 명쾌하다. "존 포드 감독과 존 웨인, 우위썬(吳宇森) 감독과 저우룬파(周潤發) 처럼 느낌이 통하는 관계입니다. 절대 동생으로 생각하지 않죠. 한집에 살아도 돈 문제도 철저하게 구분하는 걸요. "

"저를 형의 '옵션' 비슷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작품에선 절대 형-동생으로 갈 수 없죠. 감독이 배우에게 요구하는 것과 배우가 감독에서 할 수 있는 것 사이에서 접점을 찾는다고나 할까요. "

류감독은 새로운 모험에 나섰다. '죽거나… ' '다찌마와 리' 가 제작비 1억원 미만의 변방영화였다면 '피도… ' 는 제작비 20억원의 주류영화인 것. 전도연.이혜영 등 정상급 스타도 나온다.

"물론 부담이 크죠. 그러나 색깔이 크게 변하진 않을 겁니다. 일본의 거장인 구로자와 아키라처럼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메가폰을 잡는 그런 감독이 되고 싶어요. 그동안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부단하게 넘나들 겁니다. "

그 형의 그 동생인가. 류승범도 '초록은 동색' 이다. "액션이든 멜로든 한 분야를 매듭짓는 배우가 되겠습니다. 그리고 단 10만원을 받더라도 제가 꼭 필요한 영화를 할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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