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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 주택가 조용한 2층집 ‘인디밴드 아지트’였군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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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밴드 연습실과 녹음 스튜디오가 있는 1층에서 권혁일 대표(사진 왼쪽)가 통기타로 ‘로망스’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형 권혁천 소장이 “넌 어떻게 아직도 그 곡을 외우고 있냐?”며 놀라자 동생이 답한다. “그냥 손이 외우는 거지 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마흔하고 네 해, 숨가쁘게 달려왔다. 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을 거쳐, 포털 사이트 ‘네이버’의 창업멤버로 참여해 이를 한국 최대 사이트로 키워냈다. 네이버의 기부문화를 이끄는 해피빈 사업을 맡아 7년간 300억원이 넘는 기부금을 모으는 성과도 이뤘다. 하지만 마음 속에는 늘 ‘또 다른 꿈’이 남아 있었다. 삶을 음악으로 채우고 싶다는 욕구였다. 지난해, 새로 집을 지으면서 그는 건축가인 형에게 “밤 12시에도 마음껏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판교동 단독주택 단지에 들어선 1·2층 합쳐 258㎡(약 78평)의 아담한 주택. 이 집은 재단법인 ‘해피빈’의 권혁일 대표와 그의 형인 권혁천(47) 원건축사사무소장 형제의 ‘꿍꿍이’가 탄생시킨 공간이다. 어릴 적부터 음악에 빠져 피아노와 기타·드럼을 독학했던 동생. 그의 꿈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형은 1년여의 설계·공사 기간을 거쳐 지난 7월 말 이 집을 완성했다. 1층 전체를 연주실과 녹음실 공간으로, 2층은 사무실 및 주거공간으로 꾸몄다.

건물 옥상에는 파티를 위한 테이블과 작은 부엌이 갖춰져 있다. [사진작가 이규열]

 문을 열고 들어서면, 한쪽 벽 전체가 거울인 연습실이 손님을 맞는다. 기타와 드럼, 전자피아노까지 놓인 밴드연주실은 물론, 본격적으로 녹음과 믹싱 작업을 할 수 있는 소규모 스튜디오까지 마련돼 있다. 혼자 음악을 즐기기에는 좀 ‘과하다’ 싶은 공간. “사실 저는 음악애호가지만, 전문가라고 할 수준은 못 됩니다. 연습실이나 녹음실이 필요한 인디밴드, 직장인 밴드, 전문 음악인들에게 이 곳을 적극 개방할 생각이에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연주하고 즐길 수 있는 ‘아지트’로 만들고 싶은 거죠.” 권혁일 대표는 “사실 음악 하시는 분들이 이 곳을 찾아오면, 옆에서 보고 배울 수 있겠다는 ‘계산’도 작용했다”며 웃는다.

 건축가인 형에게도 이 집은 새로운 도전이었다. 한쪽 변이 7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 평행사변형 모양의 필지에 맞춰 비스듬한 각도의 집을 짓고, ‘하우스 세븐디그리(House 7˚)’라는 이름을 붙였다. 집 앞 우체통부터 집 안 소파까지 벽 사이즈에 맞춰 살짝 기울어진 사각형이라, 전체적으로 유머러스한 분위기가 풍긴다. 집 안 곳곳에는 손님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담겼다. 연습실에는 작은 부엌과 전용 샤워실이 딸려 있고,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 한켠에는 아담한 게스트룸을 지었다. 옥상은 작은 파티를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처음 이 집에 들어선 사람들도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동생을 찾아온 손님들이 마음을 열고 음악 이야기, 사업 아이디어를 맘껏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가장 공을 들인 것은 역시 1층 음악실이다. 음향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도움을 받아 두꺼운 벽과 3중창 등을 이용해 1층 전체에 완벽한 방음장치를 만들었다. 드럼, 전자기타 등의 악기는 물론이고, 믹싱콘솔, 프리앰프 등의 장비도 전문가들이 만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갖췄다. 이미 CCM(기독교 음악) 밴드와 드러머 권낙주씨 등이 이곳을 찾아 작은 연주회를 가졌다. 권혁일 대표는 요즘 이 곳에서 믹싱을 공부하고 있다. “지난 해 직원들과 미래에 대한 계획을 나누면서, 제 목표를 ‘작곡가’라고 적었어요. 그동안 ‘해야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면, 이제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데 인생의 에너지를 나눠보려 합니다. 이 공간에서 많은 음악인들을 만나 그들과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 한 곡 만드는 것, 그게 앞으로의 제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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