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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cm 女감독 "내 키가 김연경만 했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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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한국 여자배구 대표 선수들이 이탈리아와의 8강전에서 3-1로 승리한 뒤 환호하고 있다. 왼쪽 뒷줄부터 시계 방향으로 김사니·하준임(3번)·정대영·김희진(19번)·한송이·김연경(10번)·이숙자(20번)·양효진(17번)·한유미(11번)·임효숙(7번)·김해란·황연주(14번) 선수. [연합뉴스]
조혜정

조혜정(59) 전 여자 프로배구 GS칼텍스 감독이 김연경(24·페네르바체)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기록은 깨져야 의미가 있는 거야. 자신 있게 미국도 넘고, 결승전에서도 승리해서 금메달을 따줘라.” 김연경은 배시시 웃었다. 조 전 감독은 “그렇게 웃을 수 있는 연경이가 정말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한국 여자 배구가 신화를 향해 날아올랐다. 세계랭킹 15위 한국은 8일(한국시간) 런던 얼스코트에서 열린 이탈리아(4위)와의 8강전에서 세트스코어 3-1로 역전승했다. 한국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예선에서 이탈리아를 3-2로 꺾은 뒤 이후 5연패를 당했다. 8년 만에 이탈리아 악몽을 털어낸 한국은 이제 올림픽 구기종목 사상 첫 메달(동메달)을 따냈던 36년 전, 1976년 몬트리올의 신화 재현을 노린다. 9일 오후 11시 준결승 상대는 세계 1위 미국이다. 조 전 감독은 몬트리올에서 함께 뛰었던 이순복·유경화씨와 함께 2일 런던으로 날아가 후배들을 응원했다. 7일 귀국한 그는 “8강전을 앞두고는 ‘이탈리아만 이겨다오’라고 생각했는데 욕심이 생기더라. 지금의 전력, 자신감이라면 미국도 꺾을 수 있다”고 말했다.

 36년 전 몬트리올에서 ‘한국의 작은 새’가 날아올랐다. 조혜정은 1m64㎝의 ‘작은 레프트’였다. 그의 스파이크는 1m80㎝를 웃도는 높은 서양의 벽을 뚫었다.

몬트리올 대회 여자 배구에는 8개국이 출전했다. 한국은 예선에서 소련에 1-3으로 패했으나 동독과 쿠바에 각각 3-2 역전승을 거두고 4강에 올랐다. 당시 최강이던 일본과의 준결승에서는 1-3으로 졌지만 3·4위전에서 헝가리를 3-1로 꺾었다. 조 전 감독은 “당시 우리 대표팀 평균신장이 1m70㎝를 조금 넘었다. 신장의 열세가 있었다. 그리고 동구권이 배구계를 이끌고 갈 때라 알게 모르게 불리한 판정을 받기도 했다”고 떠올렸다.

현재 대표팀을 말할 때 그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조 전 감독은 “연경이가 있지 않나. ‘나는 작은 새’는 ‘애칭’이었다. 연경이는 이미 세계 최고 선수로 ‘공인’ 받았다”고 했다.

 1m92㎝의 장신 레프트 공격수 김연경은 이탈리아전에서 팀 공격의 40.7%를 책임지면서 28득점을 했다. 영국 BBC는 김연경을 ‘수퍼우먼’이라고 표현했다. 조 전 감독은 “내가 키가 그만했더라면? 그래도 연경이가 한 수 위다. 연경이는 그 큰 신장에 놀라운 ‘배구 센스’까지 갖췄다”고 말했다. 지금 대표팀의 평균 신장은 1m82cm다.

 김연경과 손발을 제대로 맞추는 감독과 선수들도 있다. 김형실 감독은 올림픽 출전권을 따낸 뒤 자비 600만원을 들여 기념 반지를 제작해 선수들과 나눠 끼었다. 선수들은 ‘팀’을 생각하며 코트 위로 몸을 던졌다. 조 전 감독은 “36년 전과는 다르다. 신장 차가 줄었고, 국력 상승으로 판정의 억울함도 없다. 준결승과 결승전이 정말 기대된다”고 했다.

하남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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