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에 대문자…'촌티 유니폼' 이런 뜻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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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런던 올림픽 개막 전 ‘타임’지는 출전국 단복을 평가해 베스트와 워스트를 발표했다. 아르마니, 스텔라 매카트니, 보그너, 프라다, 에르메스, 랄프 로렌 등 쟁쟁한 명품 브랜드들이 참여한 터라 흥미로웠는데, 빈 폴이 디자인한 대한민국 단복이 베스트 중 하나로 뽑혀 즐거웠다.

 그런데 상당히 의아한 디자인이 있었다. 러시아와 스페인의 단복과 트레이닝복이다.

 러시아는 빨간 바탕에 뭔가 복잡한 무늬가 꼬물꼬물 들어가 있는데, 정중앙에는 웅변하듯이 RUSSIA란 대문자가 크게 새겨져 있다. 다들 ‘촌스럽다!’ 이게 첫 느낌일 것이다. 아니 21세기에 저런 직설적인 디자인이라니! 아니다, 세상엔 다 이유가 있는 법. 러시아에도 훌륭한 디자이너들이 많을 터인데 왜 저런 게 나왔을까?

 아시다시피 러시아는 이번 대회의 바로 다음 올림픽인 2014 소치 겨울올림픽 개최국이다. 2018년에는 FIFA 월드컵을 개최한다. 러시아는 분명히 런던 올림픽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특별한 것으로 격상시키고 싶을 것이다. 다른 한편, 런던 올림픽이 끝나면 세계의 이목은 엄청난 경제 위기와 선거 정국, 지역 단위 전쟁에 다시 집중될 것이다. 현재 세계경제 위기의 본질은 화폐의 신용시스템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석유·천연가스·희토류금속·금 등을 비롯한 지하자원이나 곡물 같은 식량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힘을 얻을 것이다. 따라서 러시아는 자원부국으로서 자신들의 힘을 확고하게 키우려고 할 것이고, 2012-2014-2018년의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그 힘을 자랑하고 싶을 것이다.

 왜 길게 경제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러시아 올림픽 팀의 상징으로 단복에 그려놓은 문양이 바로 불새(Firebird)의 깃털 패턴이기 때문이다. 불새는 잿더미 속에서 죽은 뒤 부활하여 영생을 누리는 전설의 새다. 지금 러시아는 다시 한번 대제국의 영광을 재현하고 싶은 것이다. 단복을 디자인한 보스코(BOSCO)사는 세계 유명 컬렉션을 멀티로 공급하는 막강한 유통그룹이기도 하다. 물론 소치 겨울올림픽의 후원사다. 선전예술이 발달한 러시아에서, 더구나 이런 대규모 기업은 정치적 이해관계 없이 커나갈 수가 없다. 결국 보스코사의 디자인은 러시아의 ‘대제국 부활’이라는 열망에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남들이 촌스럽다 뭐라 하든 자신들은 직설적이고 강한 디자인을 원했던 것이다.

 그럼 쇼킹했던 촌발 디자인의 스페인 단복 패턴은 무엇을 상징하나? 스페인 전통문화를 충분히 연구해 반영했다는 보스코사의 변명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촌스러운 디자인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스페인올림픽위원회 알레얀드로 블랑코 위원장은 “논의의 여지조차 없었다”고 푸념했다. 150만 유로(약 21억원)로 추정되는 단복·유니폼 비용을 절약하는 마당에 디자인은 차라리 사치였다. 2012년 현재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 79.8%로 예상되는 재정 파탄 위기의 스페인은 지금 올림픽 단복 디자인을 논할 여유가 없다.

장부다 스포츠전문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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