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숭례문 관리책임 아무도 안 지겠다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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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4년6개월 전인 2008년 2월 10일, 우리는 대한민국의 상징이자 국보 1호인 숭례문이 불에 타 무너지는 참혹한 광경을 목도했다. 그러나 정작 국민을 더욱 실망시킨 것은 화재 후 유관 기관들의 태도였다.

 국회에 출석한 문화재청·소방방재청·서울시청 등이 서로 참사 책임을 떠넘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여야 정치권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서울시장을 지낸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중 어느 쪽 책임이 큰지를 놓고 부질없는 논쟁을 벌였다. 복구를 앞두고는 관련 예산을 어느 기관에서 부담할지를 두고 눈치싸움이 치열했다.

 숭례문 복원공사 완료를 4개월여 앞두고 비슷한 추태가 재연되고 있다. 숭례문 관리 책임을 서로 맡지 않으려는 떠넘기기 경쟁이다. 현재는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서울 중구청이 관리단체로 지정돼 있다. 관리 비용도 원칙적으로 중구청 부담이다. 그러나 중구청은 6급 팀장 1명, 7급 팀원 2명 등 단 3명이 관내 144개 문화재를 담당하고 있어 숭례문까지 맡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은 전국의 그 많은 문화재를 직접 보살피기 불가능한 데다, 숭례문만 예외로 할 경우 관리체계의 원칙과 기준이 무너진다고 주장한다. 서울시는 중간에서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기관마다 할 말과 근거가 있겠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관료주의·부처이기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공무원들의 인력·예산 타령을 그동안 어디 한두 번 들어보았는가. 국민 입장에서는 내가 낸 세금으로 숭례문이 안전하고 격조 있게 자리를 지켜주면 만족이다. 어느 기관이 관리를 담당할지 여부, 극단적으로 말해 중구청이 맡든 제주특별자치도가 맡든 개의할 까닭이 없다. 어디서 서로 책임을 안 지려고 꽁무니를 빼는가. 문화재보호법에는 관리단체가 부담 능력이 없을 경우 국가 등이 부담할 수 있다는 조항도 엄연히 있는데, 이런 문제 하나 해결할 행정력이 없다는 말인가.

 국민을 불안하게 만들지 말라. 지금 같은 자세로는 제2, 제3의 문화재 참사가 또 발생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관계기관들은 한심한 떠넘기기를 중단하고 내 일이라는 자세로 즉각 협의·조정에 착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