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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김영환 사건, 한·중 신뢰 기회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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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
중어 중국학과

김영환 고문 사건은 ‘자국민의 기본 인권 보호’라는 원론적 명제와 맞닿아 있는 단순 명료한 사안이다. 한국 정부가 요구하는 진상조사와 그에 따른 사과 및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 방지를 중국이 수용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중국 정부가 고문 사실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서 문제가 확산하고 있다. 이제 이 사건은 수교 20주년을 맞이한 한·중 관계는 물론이고 양국 모두에 중대한 정치외교적 과제가 되고 있다.

 중국에 인권문제는 국제 사회와 오랜 갈등을 빚어온 아킬레스건이다. 중국은 이 문제로 미국 등 서방 국가들과 날카롭게 대치하고 있다. 김영환 사건은 중국 정부에 국가 이미지, 체제의 도덕성, 그리고 미·중 관계, 북·중 관계, 한·중 관계 등과 얽혀진 복잡한 사안이 되었다. 한국 역시 외교적 위상, 북한 인권문제, 남북관계, 그리고 대중국 외교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양국 정부 모두 다양한 이해 당사자들을 의식해야 하는 까닭에 적정선의 합의점을 도출해내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미국의 동아시아 복귀(pivot to Asia)가 추진되면서 미·중 양국이 동북아에서 미묘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불거져 더욱 복잡해질 개연성을 갖고 있다.

 이번 사안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반드시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다. 중국은 미국을 넘어서는 새로운 초강대국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이른바 ‘조화 세계(和諧世界)’ ‘조화 아시아(和諧亞洲)’를 주창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중국의 인권 환경의 개선 등 새로운 내적 혁신을 추동하는 계기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 역시 북한 인권문제, 남북관계, 한·중 관계, 그리고 중견국(middle power) 위상에 걸맞은 규범 기준과 외교 역량 조성 등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특히 연말 대선을 앞두고 국운과 관련된 현안들이 단지 국민 정서를 자극해 정쟁의 도구로 소모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양국이 머리를 맞대고 이 문제를 슬기롭게 푼다면 ‘협상을 통한 해결’이라는 흔치 않은 경험을 공유하게 돼 신뢰를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 양국관계는 자칫 지역 질서 재편이라는 구조적 환경과 맞물리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질 것이다. 수교 20년을 맞은 한·중 양국이 ‘아름다운 동행’의 파트너로 거듭나기 위해 진솔한 고민을 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한·중 양국은 수교 20년을 축하하기에 충분한 비약적인 관계 발전을 이루어냈다. 연간 인적 교류 650만 명이라는 수치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러한 비약적 성장에 부합하는 기본적인 안전장치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것이 한·중 관계의 또 다른 현실이다. 급증하는 인적 교류에도 불구하고 아직 영사협정조차 체결되어 있지 않다. 최근 중국도 해외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인간 안보와 자국민 보호의식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다. 이제는 관계발전의 양적 지표를 자랑하기에 앞서 양국 간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갈등과 위기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고 사후에 합리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양국 정부가 이를 위한 적극적 노력에 나서야 할 시점이다.

 이번 사건의 해결 역시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 한·중 양국은 가능한 모든 창구를 동원해서라도 이번 사건을 냉철하게 해결하고 다각도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가야 할 것이다. 한·중 관계가 갈등과 긴장의 관계로 나아갈지, 신뢰 강화를 위한 중요한 경험을 공유하는 계기가 될지 시험대에 올라 있다.

이동률 동덕여대 교수 중어 중국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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