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마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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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의 일이다. 베를린에 처음 부임했을 때 서울에서 3개월짜리 비자를 받아왔다. 지금은 때가 되면 독일 공보처에서 1년짜리 비자로 연장해 주지만 당시엔 직접 외국인관리국에 가서 비자를 연장해야 했다.

새벽 5시부터 일가족 네명이 서너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겨우 차례가 왔다. 비자를 연장해 준 직원이 코에 손을 갖다 대며 짜증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너 오늘 마늘 먹었어?"

가뜩이나 심사가 틀린 판에 건방진 친구가 약까지 올리는 게 아닌가.

"그래, 먹었다. 왜? 너 샤워한 지 얼마나 됐어? 너한테선 치즈 썩는 냄새가 난다. …"

불의의 일격을 당한 이 친구는 벌겋게 상기된 채 아무 말도 없었고 옆에 있던 여직원이 말리기에 못이기는 척 나왔지만 속이 다 후련했다.

이후 독일에 살면서 외출할 때 가급적이면 샤워를 하는 습관이 생겼다. 특히 인터뷰 약속이라도 있으면 반드시 양치질에 목욕을 하고 나간다. 김치(마늘)냄새 때문이다. 남의 나라에 살면서 이런 사소한 것 때문에 약점 잡힐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다.

마늘을 뺀 우리 음식문화는 상상할 수 없다. 단군신화에 마늘이 나오는 걸 보면 우리 민족의 마늘 상식(常食) 역사는 꽤 깊은 것 같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피라미드 공사에 동원된 인부들에게 스태미너식으로 마늘을 먹였다는 기록이 있다.

마늘의 독특한 향기는 알리신이란 물질 때문인데 바로 여기서 마늘의 신비한 효능이 나온다. 마늘이 몸에 좋다는 것은 동서고금 공인된 사실이다.

중국의 『본초강목(本草綱目)』은 마늘이 성욕을 증진시키고 기생충을 구제한다고 소개하고 있으며, 로마의 플리니우스가 편찬한 『박물지』에도 치질.궤양.천식 등 무려 61가지 병에 효험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최근에는 성인병과 각종 암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증명되고 있다.

가위 만병통치 음식인 셈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농약 콩나물' 같은 온갖 험한 음식을 먹고도 버티는 게 다 마늘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마늘 냄새를 싫어하는 독일인들도 요즘엔 마늘이 몸에 좋다는 걸 알고 궁여지책으로 마늘 가루를 캡슐로 만들어 복용한다.

중국의 압력에 밀려 타결된 한.중 마늘협상에 농민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안에서 큰소리 치는 이 정부가 외교무대에선 제대로 하는 게 없다.

'마늘 더 먹기 운동' 같은 미봉책 말고 진짜 농민들을 위한 장기대책이 시급하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js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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