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소송 부메랑 … 법정서 드러나는 애플의 속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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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이달 3일(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의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 재판장에서 e-메일 한 통이 공개됐다. 올 1월 에디 큐 애플 수석부사장이 작성한 ‘나는 왜 아이패드를 버렸나(Why I just dumped iPad)’란 제목의 e-메일이었다. 큐 부사장은 e-메일에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을 써보니 사람들이 왜 칭찬하는지 알겠더라”며 “7인치 태블릿PC 시장이 확실히 있고 애플 역시 여기에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썼다. 아이패드는 9.7인치고, 갤럭시탭은 7인치다. 이 e-메일의 수신자는 최고경영자(CEO)인 팀 쿡을 비롯해 필 실러 마케팅부문 부사장, 스콧 포스털 모바일소프트웨어 부사장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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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큐 부사장은 “스티브 잡스에게도 (7인치 태블릿의 필요성을) 여러 번 보고했고, 그 역시 마지막엔 수용하는 것처럼(respective) 보였다”고 덧붙였다. 잡스는 2010년 7인치 태블릿에 대해 “그런 제품을 제대로 쓰려면 사용자의 손가락을 갈 사포를 동봉해야 할 것(화면이 작아서 제대로 쓰기 어렵다는 뜻)”이라며 삼성의 갤럭시탭에 대해 ‘DOA(도착 시 사망)’라고 평한 바 있다. 이날 e-메일을 공개한 건 삼성전자 측이다. 애플 내부에서도 삼성 제품을 눈여겨보고 있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7인치 크기의 ‘미니 아이패드’가 나올 것이라는 루머는 올 4월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애플 측은 모르쇠로 일관했으나 이번에 공개된 e-메일로 미니 아이패드 출시 가능성이 크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특허 소송 공방전이 계속되면서 베일에 가려져 있던 애플의 속살이 드러나고 있다. 루시 고 판사가 “재판은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며 “공판 내용을 비밀로 해달라”는 양 사의 청원을 기각했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오가는 직원들의 대화를 통해 신제품이 누설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직원 전용 레스토랑까지 차릴 정도로 철저한 ‘보안유지’를 고수해온 애플의 비밀주의가 법정에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애플이 쓴 광고비도 공개됐다. 실러 부사장은 이날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애플이 미국에서 아이폰 광고에 6억4700만 달러(약 7300억원)를 썼다고 밝혔다. 2010년 내놓은 아이패드 광고비로 쓴 돈은 4억5720만 달러(약 5200억원)였다. 애플이 그간 ‘보호가 필요한 영업 비밀’이라며 공개를 꺼려온 국가별 매출현황도 공개될 예정이다. 애플은 재판부에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손해배상액 주장에 대한 근거를 밝혀야 한다”며 기각했기 때문이다.

 ‘아이폰 디자인에 소니 스마트폰을 참고했다’는 비화도 소송 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진 사실이다. 삼성전자 측이 애플의 전 디자이너 신 니시보리를 찾아가 직접 이런 내용의 증언을 얻어냈기 때문이다. 재판부가 정한 증언 청취 기한을 넘겨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되지 못하자 삼성전자는 언론을 통해 공개하는 강수를 뒀다. 이에 애플이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은 증거들을 언론에 공표한 것은 비윤리적”이라며 제재를 요청했다. 재판을 담당하고 있는 루시 고 판사는 삼성 측에 ‘재발 방지’를 경고하는 선에서 애플의 요청을 기각했다. 그는 “배심원 9명에게 공표 내용을 접한 적이 있는지, (이번 증거 공개가) 배심원 평결에 영향 미칠 수 있는지 파악한 뒤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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