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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경제’의 함정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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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호 34면

대선을 앞두고 한·미 두 나라에선 주자들이 예외 없이 ‘경제 대통령’을 다짐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는 밋 롬니와 일자리 창출을 놓고 연일 난타전이다. 우리 후보들은 경제 민주화와 복지 논쟁을 보탰다. 대선판은 온통 경제 전문가로 넘친다. 캠프마다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경제학 교수가 동원됐다. 끝물인 줄 알았던 글로벌 경제위기가 이제 시작이라니 그럴 법도 하다. 내년은 누리엘 루비니 교수가 ‘퍼펙트 스톰’이 온다던 바로 그해다. 미·중·유럽이 한꺼번에 흔들려 세계 경제가 재난상황에 빠져들 수 있다는 거다. IMF 위기에 놀란 가슴인데, 강심제라도 먹어야 내년을 버틸지 모른다.

최상연 칼럼

하지만 따지고 보면 지난 대선은 더 그랬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앞뒤로 선거를 치른 이명박(MB) 대통령과 오바마의 승부처는 경제 살리기였다. 오바마는 변화를 얘기했다. MB는 샐러리맨 성공시대를 앞세웠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다. BBK란 대형 악재를 돌파하는 힘이 됐다. 선거일이 닥쳐오자 “거짓말 좀 하면 어떠냐. 경제 살린다는데…”란 ‘경제 만능론’이 먹혔다. 그런데 더 생각해 보자. 민생과 경제가 쟁점이 아닌 선거란 따지고 보면 드물다.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가 나온 게 이승만 대통령 때다. 빌 클린턴의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는 한국에서 가장 많이 변용된 슬로건이다.

문제는 경제선거가 끝난 뒤 경제가 정말 살아났느냐는 거다. 멀리 갈 것 없이 오늘 우리를 보자. 연 7% 경제성장이 MB의 약속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3% 성장률에 가슴을 졸인다. 전 세계 평균 성장률에도 못 미치는 성적이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부’의 실력이다. MB는 세계 경제 탓으로 돌릴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샐러리맨은 성공했을까? 40대에게 물었더니 “은퇴 후 오래 살까봐 걱정”이란 답변이 절반을 넘었다. 물가는 하늘을 찌르는데 집값은 폭락했다. MB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불만은 70%를 넘는다. 바다 건너 오바마의 미국도 편안한 모양새는 아닌 듯하다. ‘헬리콥터 머니’로 급한 불을 끈 건 오바마의 업적이다. 하지만 방대한 부채의 해결책을 찾지 못해 미국은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는 수모를 당했다.

MB나 오바마가 경제 살리기에 소홀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둘다 ‘닥치고 경제’에 올인한 얼리버드(early bird) 정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경제 대통령’의 발목을 잡은 건 ‘닥치고 경제’였다는 게 오바마의 회고다. 미국 신용등급이 추락한 건 오바마가 야당과의 부채 상한선 협상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여야 간 거리는 역대 정부 중 가장 크게 벌어져 있다.

오바마는 최근 “대통령은 단순히 정책을 올바르게 집행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소통하지 못한 게 아쉽다”고 토로했다. MB도 ‘닥치고 경제’였는데, 한국식 낡은 정치까지 보태졌다. 금산분리 완화, 공기업 민영화와 구조조정 등등을 놓고 여야는 ‘MB 악법’ 대 ‘MB 약법’으로 사사건건 드잡이였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세종시, 동남권 신공항 등 어떤 이슈에도 나라의 에너지를 모으지 못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한 행정구역 개편이나 부패 척결, 교육·사법·국방 개혁은 아예 손도 못 댔다. 대한민국 퍼펙트 스톰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에서 먼저 왔다.

일자리·복지 확대, 경제 민주화를 바라지 않는 국민은 없다. 선거로 그걸 만들어 보자는 게 투표장으로 향하는 유권자의 마음이다. 중요한 건 실천이고, 어떻게 만들 것이냐는 방법론이다. 무엇보다 정치가 살아나고 정당정치가 업그레이드돼야 가능해진다. 그러려면 지역 대결 구도를 다스려야 한다. 게다가 우리에겐 미국과 달리 또 다른 숙제도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이다. 차기 정부의 임기 5년은 남북 문제를 해결하거나, 해결의 실마리를 잡아야 할 시기다. 그래서 문제는 정치다. 또 북한이다. 그런데 왜 모두 경제만 얘기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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