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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安과 박근혜가 한판 붙으면 만만치 않은 싸움 벌어질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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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호 06면

지난달 27일 부산에서 열린 새누리당 대선후보 합동연설회. 이날 ‘안풍’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송봉근 기자

“기존 정치인들이 얼매나 몬했으먼 안철수 선생이 나왔겠십니꺼. 부산에선 박근혜도 위태롭십니더.”
지난 1일 저녁 부산역에 도착하자마자 김상호(61)씨가 운전하는 택시를 잡아탔다. 김씨는 부산에서만 23년째 택시를 몰고 있다. 매일 다양한 사람들을 태우는 김씨는 요즘 새삼 안철수의 인기를 실감한다. 김씨는 “손님들 태우믄 안철수 얘기 마이(많이) 합니더. 철수가 출마 선언 해가(해서) 근혜랑 한판 붙으믄 만만치 않을낍니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씨는 안철수 원장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에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안철수가 학자로서는 옛날 인물로 따지믄 에디슨 같은 분 아닝교. 근데 정치인으로서는 잘 모른다 아입니꺼”라며 라디오 뉴스의 볼륨을 높였다. 라디오에서는 한 정치 전문가가 이번 대선에서 불거질 주요 이슈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변화 기류 흐르는 새누리당 텃밭 부산

부산은 새누리당의 전통 텃밭이다. 하지만 안철수 원장의 고향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산 시민들이 안철수 원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복합적이다. 20~40대 사이에서 안 원장의 인기는 뜨겁다. 그러나 50~60대 세대가 안 원장에게 느끼는 반감 또한 만만치 않다. 안 원장을 지지하는 이들은 그의 ‘참신함’을 강조한다. 부산 서면의 한 대형서점에서 안철수 원장의 책 안철수의 생각을 관심 있게 바라보던 주부 송현미(39·부산시 진구)씨는 “기성정치가 워낙 식상하고 답답하지 않나. 안 원장은 그걸 바꿔나갈 수 있을 것 같다”고 기대감을 보였다. 그러면서 “박근혜 후보도 훌륭하지만 기존 정치의 틀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안 원장의 지지세가 가장 뚜렷한 곳은 대학가다. 같은 날 오후 부산대 교정에서 만난 대학생 김준호(22·경영학과)씨는 “안 원장이야말로 우리 청년들을 이해하는 정치, 새로운 정치를 보여줄 유일한 후보라고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중앙도서관 앞을 지나던 이규연(26)씨도 “어르신들은 무조건 박근혜, 박근혜 하는데 그래서 더 반감이 생긴다. 민주통합당엔 카리스마 있는 후보가 딱히 없는 것 같고 역시 대안은 안철수”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조금 다른 견해도 있었다. 이름 밝히길 꺼린 사회학과 김모(24)씨는 “그분이 기존 정치권에 적응을 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된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안철수의 생각을 계기로 호감을 더 느낀다는 대학생이 많았다. 윤재연(23·부산시 남구)씨는 “책을 읽어봤는데 전국민의 공감대를 담은 데다 생각이 상당히 젊다고 느껴졌다”고 평가했다.

대학가 밖에선 생각들이 엇갈렸다. 다음 날 3일 아침 일찍 부산 자갈치시장을 찾았다. 생선이 담긴 스티로폼 박스를 옮기는 상인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옮겨 온 박스에서 갈치를 꺼내 손질 중이던 생선가게 주인 이범섭(50)씨는 “안철수는 안 나오는 게 맞아요. 지가 정치를 뭘 안다꼬. 원래 하던 지 전공 계속하는 게 나라 도와주는 거제”라며 손을 내저었다. 시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50~60대 상인들은 안 원장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국수가게 주인 김정태(68)씨는 “안철수는 오리무중인기라. 대선이 코앞인데 아직 검증이 안 됐어요. 책 하나 쓱 내고 말이제. 고향 사람이라 웬만하면 밀어줄라카는데 속이 뻔히 보여”라고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려던 상인 장모(69)씨는 김씨의 이야기를 듣고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됐다 마 치아라. 이놈이 되든, 저놈이 되든 시곗바늘은 돌아가게 돼 있는디. 다 거기서 거긴 거라.”

세대별로 안철수 원장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다르다 보니 갈등도 생긴다. 대학생 이희웅(26·부산대 컴퓨터공학과)씨는 “우리 가족 중 아버지는 여당, 나는 안철수라 어색한 다툼이 있다. 저번엔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다짜고짜 ‘너도 안철수 좋아하나. 정치 그리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충고해서 기분이 몹시 나빴다”고 말했다. 부산 국제시장번영회 김종민(57) 회장은 “요즘 애들은 신중하게 생각하지도 않고 바꾸려고만 한다”고 지적했다. 택시기사 김상호(61)씨는 “세대마다 역사관이 달라서 정치에 대한 생각도 다 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부산에 안철수 바람은 분명히 흐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태풍이 될지는 미지수다. 권영대(49) 전 부산시의원은 “부산의 40~50대 시민들 중에는 친노에 대한 거부감 때문에 새누리당 지지층이 된 경우가 적지 않다”며 “이들은 친노 성향의 민주통합당 사람이 아닌 안철수 원장이 단일 후보로 나올 경우 안 원장을 찍겠다고 말한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4·11 총선 때 출마 경험을 가진 성희엽 전 부산시장 특보는 “부산은 서울과 달리 ‘우리가 남이가’ 같은 스킨십 요소가 중요한데 안철수는 아직 그런 것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더구나 막판 결집현상이 심한 부산 민심을 고려하면 더 두고 볼 일”이라고 했다.

하정태 부경대 총동창회 부회장은 “현재 부산 민심은 ‘태풍 속의 핵’”이라고 말했다. 그 핵이 얼마나 커져서 대선에 큰 바람을 몰고 올지는 알 길 없다. 그러나 뭔가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데는 모두 의견을 같이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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